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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정제 폐지, 의료계 붕괴 초래"

장종원
발행날짜: 2003-11-10 13:13:50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김진현 교수

최근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의 연구용역으로 건강보험과 자동차 보험의 수가를 일원화 해야한다는 요지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기준 개선방안' 보고서를 연구발표한 인제대학교 김진현 교수(보건행정학과)로부터 의료계 현안 전반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한 과정과 참여자 구성은?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에서 발주한 이번 연구는 인제대와 한림대, 한국소비자보호원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참여연구원은 인제대 1명, 한림대 2명 소보원 1명, 대구한의대 1명, 서울대 1명이었고 병원관계자와 심평원 등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다. 연구기간은 약 7개월이었다.

건보와 자보의 수가일원화 논의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자보수가와 산재수가는 장기적으로 건보수가를 기준으로 일원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질병이 동일하면 치료법도 동일할 것이므로, 환자의 보험종류에 따라 수가체계가 다르게 적용될 이유는 없다. 과거 건강보험이 통합되기 이전 직장보험, 지역보험, 의료보호 등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이들 보험종류별로 별도의 수가체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재 자보, 산재, 건보가 각기 다른 수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부처할거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할 부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 임상적 특성의 차이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강보험수가가 원가보다 낮다고 보는가?
진정한 원가수준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회계적 방법에 의해 원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가가 원가보다 낮을 때 의료시장에 나타나는 현상과 수가가 원가보다 높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의료시장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수가수준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원가산정시 의사의 인건비를 얼마로 책정하는가에 따라 회계적 원가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의사 인건비가 얼마가 적당한가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를 본 적이 없다. OECD 보고서 등을 보면 일반근로자의 평균소득에 대한 의사소득의 비를 기준으로 국가간 의사소득수준을 평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전체환자 중 보험환자가 대부분인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일반외과 등 기본 진료과목에 대한 수가는 원가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측면이 있고, 비보험환자가 많은 과목의 경우에는 수가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생각한다.

수가는 상대적인 측면이 있다. 예컨대, 의사라고 하여 다 같은 수준의 의사가 아니고, 의료기관도 종별이 같다고 하여 같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일반의와 전문의간의 수가 차이가 없고, 전문의가 시행한 행위간에도 차이가 없다. 동일한 3차기관 내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의 의술을 가지고 있는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건보수가의 서너배를 책정해도 아깝지 않고(사실 그렇게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 말이 대학병원이지 2차기관보다 못한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건보수가의 절반도 많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차등이 불가능하므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당분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의료서비스 평가 등을 통해 수가를 차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두 가지 다 현실성도 없고,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된다.

당연지정제에 있어 대만의 사례를 보면 건보공단과 개별 의료기관이 진료계약을 맺는 방식인데, 과도한 진료비 청구나 허위, 부당청구가 있을 경우에는 해당 의료기관과 계약을 취소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의료기관은 도덕적 비난과 환자수 감소로 더 이상 진료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곧 바로 이 같은 현상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의료계가 당연지정제 폐지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단일보험자와 다수 의료기관간의 관계에서는 당연히 단일보험자가 우위에 서게 된다. 당연지정제 폐지로 이득을 보게 될 의료기관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운영하는 극소수의 3차병원, 비보험환자가 대부분인 성형외과, 치과 등 일부 진료과목 뿐이다. 나머지 보험급여가 대부분인 필수 진료과목들은 건보공단의 처분에 생사여부를 맡겨야 한다. 조금만 공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진료패턴을 보이게 되면 곧바로 계약취소의 통고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당연지정제가 오히려 대부분의 의료기관을 보호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이탈리아에서 민간병원은 NHS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일반환자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민간병원이 설립초기의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정부에게 NHS환자를 진료하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다국적 기업이 설립한 밀라노 최고의 민간병원은 현재 NHS환자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내년에는 NHS환자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완전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에 도입에 대한 견해는?
의료계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제로 전환하자고 하면, 일각에서는 의료기관개설과 의사면허도 계약제로 하자고 할지 모른다. 진료행태를 보아가면서 의료기관 개설을 재계약하지 않을 수 있고, 면허도 갱신하지 않고 자동취소되도록 할 수 있다. 제도란 사회가 만든 것이고, 따라서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가 있는 것이지 의사를 위해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형 민간보험은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 이점에서 대체형 민간보험을 시행하고 있는 일부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복지부도 대체형 민간보험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보험시장은 과점시장 형태이다. 즉, 소수의 보험회사가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보험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개별 의료기관을 통제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소수의 보험사가 담합하여, 특정 의료기관에 환자를 보내주지 않으면 해당 의료기관으로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거대 HMO가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면서 보스턴 최대병원이었던 NEMC(New England Medical Center)의 병상수는 900병상에서 350병상으로 축소되었다. 진료비 지불계약도 주로 행위당수가제에서 인두제로 전환되었다.

우리나라의 민간보험시장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과점적 시장조직이므로 이 같은 미래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민간보험은 이윤추구가 본질적 목표이므로 심평원보다 진료비 심사를 더 철저히 할 것이고, 부당허위청구가 발견되면 해당 의료기관을 곧바로 법정에 세울 것이다. 의료계가 이러한 상황을 원하는가?

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측이 발표한 반박문의 일부이다. 어떻게 보는가?

"의보환자와 자보환자의 치료의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병코드와 수술료 항목은 세분화가 안되어 경증이든 중증이든 같이 분류되고 있을 뿐이다. 어찌하여 병명코드가 동일하다고 하여 단순나선골절과 분쇄골절을 같은 질환이라 주장하며, 수술료 수가코드가 동일하다 하여 각각의 치료가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가"


가령 화상환자가 있는데, 불의 종류에 따라 가스불환자, 연탄불환자, 장작불환자, 아궁이(짚)불환자로 나뉜다고 하자. 동일부위에 동일수준의 화상을 입었는데 불의 종류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야 하는가? 선진국의 의사들은 전혀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다르다고 주장하는가? 한국의 정형외과학회와 외국의 정형외과학회를 한자리에 초청하여 자보환자와 건보환자의 차이점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할 것을 제안한다.

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자. 즉, 질병의 분류체계가 미비하여 중증(자보환자)과 경증(건보환자)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데 중증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왜 처치내용은 동일한가? 이번 연구에서는 의무기록자료에 근거하여 모든 처치내용(붕대 사용량까지)을 비교조사하였다. 중증도가 달라서 치료내용이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치료내용에 차이가 없거나 치료내용이 더 적은 경우도 발견되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자보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형외과학회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수가는 행위에 대한 단가(unit price)이고 급여범위가 아니다. 따라서 진료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의료계의 주장은 이것을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와 많은 접촉을 통해 느껴온 감정과 소감은?
의료계도 우리사회의 수많은 이익단체 중 하나이지만, 사회 지도층으로서 일반국민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양식과 사회적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의사들이 개인적으로는 유능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체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은 아직 일반 백성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의료계가 지금까지 의료계의 이익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은 주로 인신공격이나 협박 등이었으며, 통계자료나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반론을 제기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이버테러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수의 의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 의사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전체 의료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체 내부에만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정작 바로 그 인간들로 구성되는 사회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자보수가 연구를 시작하면서 연구팀은 연구의 객관성과 중립성, 연구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대한병원협회에 협조를 요청하였으며, 병협 사무총장을 연구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그러나 자문위원 명단이 공개되자마자 병협 사무총장이 자문위원직을 사양하였고, 의료계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하였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이라도 의료계에 불리한 내용이 발견되면, 연구팀과 심의회간에 체결한 연구계약서를 복사해가서 이행여부를 따지는가 하면, 연구비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병협 지도부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것이 이번 연구에서 병원협회가 대응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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