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디지털헬스산업의 최근 3년간 성장세는 가파르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에 따르면 2022년 5조 7천억 원 시장에서 2024년 7조 7천억 원 규모로 성장하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16%를 웃돈다. 종사자 수는 5만 3천여 명, 사업체 수도 약 5천 개로 저변이 두터워지고 있다.
이런 고성장 구간은 디지털헬스 등 일부 신산업에서만 확인된다. 산업계 전문가들은 디지털헬스산업이 외형적 확장과 고용 창출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며, B2B 중심 성장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AI 기반 디지털의료기기의 가파른 확산
디지털헬스산업은 기존 헬스케어 산업구조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의료영상 판독을 넘어 임상 의사결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AI 기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허가 건수는 최근 3년 새 2.5배 이상 폭증했다.
2018년 불과 4건에 그쳤던 허가 건수는 2025년 한 해에만 157건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해 예비 소견서를 만들어주는 생성형 AI 기반 디지털의료기기도 처음 허가됐다.
의료AI가 개념검증(PoC)에서 상용 단계로 넘어와 의료기관의 워크플로(workflow)에 실제 적용되고 있다면 의료기관 밖에서는 개인건강정보 기반 맞춤형 건강관리서비스가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모바일과 웨어러블 기술 발전으로 재택 자가관리가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추세다.
식약처는 올해 디지털의료제품법을 통해 웰니스 기기인 디지털의료·건강지원기기를 대상으로 자율적 성능 인증제를 시행하는 한편,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 생태계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는 디지털헬스가 산업 간 경계를 급속히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헬스는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는 융복합 산업이다. 보험산업이 디지털헬스 서비스를 적극 도입해 사전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제약산업 역시 의약품 중심 사업구조를 환자 관리와 치료 후 케어까지 확장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웅제약과 동아에스티가 오랜 시장조사와 사업성 검증을 거쳐 디지털헬스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인프라 구축을 단행하며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통신사, IT 플랫폼업체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진입하며 융복합 생태계로 디지털헬스산업의 판을 키워나가고 있다.
핵심 연관산업인 의료기기산업은 디지털헬스산업과 밀접하게 맞물려 동반성장 궤도를 그리고 있다. 국내 디지털헬스산업 시장을 산업분류 체계별로 보면 제조업 영역의 산업용 제품 및 부분품 제조업, 정보처리업 영역의 데이터 분석 및 제공업 비중을 합했을 때 전체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며, DX(디지털 전환)·AX(AI 전환)로 진화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들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혁신과 산업 간 경계 재편을 의료기기가 견인해 디지털헬스산업 성장으로 이어가는 셈이다.
데이터 활용 구조, 가장 큰 병목
그럼에도 아직 기대에 부합하는 수준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상당수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고도 수익화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의료현장에서도 파일럿 도입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마다 귀 기울여 듣는 산업계의 애로는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을 둘러싼 제도에 대부분 기인하고 있다.
가장 큰 병목은 의료데이터 활용 구조에 있다. AI 기반 디지털헬스산업에서 데이터는 핵심 자원이며, 데이터의 양과 질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의료 분야에서 마이데이터가 시행되고,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적용되고 있지만, 국내에 풍부하게 축적된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는 규제 불확실성에 따른 활용 부담으로 진전이 더딘 상태다. 지난 4월 개최된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도 바이오헬스산업의 구조적 병목으로 데이터와 규제 문제가 꼽혔다.
근본적인 문제는 데이터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보상과 책임 구조가 미비한 데 있다. 데이터 제공자는 자신의 정보가 활용되는 데 따른 실질적 보상을 체감하기 어렵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산업계는 가명정보 재식별 이슈, 복잡한 데이터 결합 및 반출 절차, 병원 데이터의 단절(Silo), 의료데이터 활용과 의료법 충돌 가능성 등 다양한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데이터가 자발적으로 유통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의 혁신 속도가 제한된다.
법제화와 규제 개선, 데이터 유통의 전제 조건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국회에서 발의된 디지털헬스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집중적인 디지털헬스 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방안과 더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개인건강정보 활용 참여 주체에 대한 합리적 보상 마련을 명시했다.
개인건강정보의 가명처리 기준 정비와 함께 본인전송요구권 및 제3자 전송요구권 등 데이터 이동권 관련 제도도 규정하고 있어 법제화 여부가 주목된다.
나아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한 지속적인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 동일한 데이터로 AI 학습, 후속연구 등을 진행할 경우 가명정보를 반복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데이터 재수집과 재가공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의료데이터의 2차 활용 범위와 절차·조건 등을 명확화한다면 데이터 활용의 큰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영국·핀란드 등 주요국들은 이미 데이터 2차 활용까지 확대해 제도를 정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유럽건강데이터공간규정(EHDS)을 통해 회원국 간 의료데이터의 1·2차 활용을 표준화하고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구조적 혁신이 열어갈 디지털헬스의 미래
주요 선진국들은 개인건강정보와 AI를 결합한 디지털헬스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고, 데이터 인프라 구축과 규제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의 안전한 활용을 전제로 정책을 설계하고 산업화 지원을 병행해 기술 개발이 시장 창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헬스산업 경쟁력이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성, 제도 유연성, 산업 생태계 성숙도에 좌우됨을 시사한다.
올해로 19주년을 맞은 의료기기의 날을 계기로, 전통 의료기기 중심에서 디지털헬스기술로 도약하고 있는 첨단 의료기기산업 역시 데이터 활용과 AX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제고해야 할 전환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술뿐 아니라 산업구조와 제도 전반을 동시에 개선해야만 정책의 속도와 방향성이 정립될 수 있다.
AI가 촉발한 의료기기와 디지털헬스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흐름은 불가역적이다. 데이터 활용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혁신이 이뤄진다면, 의료기기와 디지털헬스는 신산업을 넘어 다양한 산업을 연결하는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며 국가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견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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