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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빅딜 완성한 로슈진단…디지털 병리 제국 꿈꾸나

발행날짜: 2026-05-14 05:30:00

'Path AI' 10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합병…AI 플랫폼 강화
데이터 기반 정밀진단 환경 강조…병리 인프라 지각변동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전 세계 진단검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로슈(Roche)가 조 단위의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병리 기업을 인수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단순히 AI 인프라를 흡수하기 위한 투자라기 보다는 암 진단과 신약 개발의 핵심 인프라가 데이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흐름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로슈가 AI 디지털 병리 기업 패스AI를 1조 5천억원에 인수하며 시장 재편에 나서고 있다(사진=AI 생성).

1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로슈가 10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디지털 병리·AI 기업 패스AI(PathAI) 인수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 조건에 따르면 로슈는 일단 7억 5000만달러를 선 지급하고 추가 마일스톤 달성에 따라 최대 3억달러를 추가 지급할 예정이다. 거래는 규제 승인 등을 거쳐 2026년 하반기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스타트업 편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로슈가 디지털병리를 미래 진단 시장의 핵심 축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병리는 말 그대로 유리 슬라이드 위 조직 샘플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해 분석하는 기술이다.

기존 병리 진단은 병리의사가 현미경으로 조직을 직접 판독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디지털병리가 도입되면 조직 이미지를 고해상도 데이터로 저장하고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암세포 패턴과 바이오마커를 자동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즉, 병리가 과거 눈으로 보는 진단에서 데이터 기반 분석 영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병리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특히 암 진단 시장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항암 치료는 단순 암 종류가 아니라 특정 바이오마커와 유전자 변이를 기반으로 환자를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병리 판독 복잡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역항암제만 해도 PD-L1 발현율이나 조직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며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s) 정확도가 선택에 핵심이 된다. 결국 병리 데이터를 얼마나 정밀하고 빠르게 해석할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로슈 또한 사업설명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정밀의료와 동반진단, AI 기반 병리 워크플로우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패스AI의 인수는 이러한 로슈의 자체적 노력에 땔깜을 더 넣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로 패스AI는 디지털 병리와 AI 기반 조직 분석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힌다. 핵심은 단순 이미지 저장이 아니라 AI 기반 병리 분석 플랫폼에 있다.

패스AI는 'AISight'라는 이미지 관리 시스템(IMS)을 기반으로 조직 이미지 분석과 워크플로우 기능을 통합 제공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병리 슬라이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AI 기반 분석 알고리즘을 적용해 병리 판독 효율을 높이는 구조다.

특히 패스AI는 병원용 진단 솔루션뿐 아니라 제약사 임상시험과 바이오마커 개발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키워왔다.

임상시험 조직 분석부터 바이오마커 탐색, AI 기반 동반진단 알고리즘 개발, 전임상·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에서 두루 디지털 병리와 AI 기술을 적용해 가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

결국 패스AI는 디지털 병리 기업이라기 보다는 신약 개발부터 정밀진단 전체를 연결하는 병리 데이터 기업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로슈가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패스AI를 인수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로슈 또한 규모는 다르지만 이 방향성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슈는 체외진단(IVD) 시장에서 이미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최강자로 꼽힌다. 하지만 기존 진단 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단순 장비 판매나 시약 경쟁만으로는 성장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디지털 병리는 아직 시장 초기 단계다. 특히 AI가 본격적으로 의료 현장에 들어오면서 디지털 병리는 탄력을 받고 있다. 병리 영상은 CT·MRI처럼 표준화된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기 쉽고 AI 학습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결국 로슈는 지금 병리 시장이 과거 영상의학 시장이 AI를 만나던 초기 단계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로슈는 이미 2021년부터 패스AI와 협력 관계를 이어왔고, 2024년에는 AI 기반 동반진단 알고리즘 개발까지 협력을 확대했다. 이번 인수는 단순 신규 투자라기보다 수년간 검증해온 파트너십을 완전히 내부화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미 로슈는 글로벌 제약사업과 진단사업을 동시에 가진 드문 기업이다. 즉 단순 진단기업이 아니라 항암제 개발과 동반진단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패스AI의 AI 병리 플랫폼이 결합되면 바이오마커 발굴부터 환자군 선별, 임상시험 효율화, 동반진단 개발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구조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특히 AI 기반 병리 분석은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 샘플 분석을 자동화하면 임상시험 환자 선별과 반응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서 디지털 병리 분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필립스는 디지털 슬라이드 스캐닝과 병리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다나허 산하 레이카(Leica Biosystems)도 디지털 병리 플랫폼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템퍼스AI(Tempus AI)가 디지털 병리 기업 페이지(Paige)를 인수하며 AI 병리 영역 확대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경쟁의 포인트는 단순한 병리 장비가 아니다. 누가 더 많은 병리 데이터를 확보하고 더 강력한 AI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이를 신약 개발과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로슈는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미 글로벌 진단 플랫폼과 제약사업을 모두 보유한 상황에서 패스AI까지 확보하면 병리 데이터의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연 로슈가 이처럼 유리한 고지에서 패스AI를 삼키며 진정한 디지털 병리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지에 산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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