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예고된 '바이오 자국 우선주의'는 국내 임상 생태계에 거대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내 제조와 임상을 우선시하는 정책 기조 속에서, 한국은 중국의 데이터 굴기와 호주의 파격적인 속도전이라는 틈바구니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임상현장에서는 의료진 개개인의 사명감에 기댄 각자도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하며 정책적인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 FDA '임상 현대화'…서류 간소화로 혁신 속도전
세계 임상연구의 나침반인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임상시험 현대화'를 넘어선 파격적인 규제 혁신을 단행했다. 2026년 2월, FDA는 관습적으로 요구되던 '2개의 대규모 확증 임상' 원칙을 깨고, '1개의 견고한 임상시험과 확증적 근거'만으로도 신약 마케팅 허가를 내주겠다는 지침을 확정했다.
이는 임상 비용을 최대 1억 5000만 달러(약 2000억원)까지 절감하고 출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조치다. 또한, ICH E6(R3) 가이드라인 채택을 통해 '위험 기반 모니터링(RBQM)'을 도입, 불필요한 행정 서류를 대폭 간소화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맞물려 "미국에서 임상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환경을 국가가 직접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임상현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호주도 CTN(Clinical Trial Notification, 임상시험 신고제) 시스템을 통해 병원 내 윤리위원회(HREC) 승인 시 식약처(TGA) 심사 없이 단 7~10일 만에 환자 투약을 시작하게 한다.
동시에 호주는 경제적 유인책도 제시하고 있다. R&D Tax Incentive를 통해 연 매출 2000만 호주달러 미만 기업이 호주에서 임상을 진행하면 발생 비용의 43.5%를 현금(Cash Rebate)으로 즉시 환급해 준다. 초기 임상(1상) 물량이 한국을 건너뛰어 호주로 직행하는 '비용의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물론 우리 식약처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글로벌 규제 조화와 임상 효율화를 위해 규제 지원 가이드(GIFT)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혁신 신약의 상담 주기를 단축하고 있으며, 디지털 의료기기 임상을 위한 분산형 임상시험(DCT) 도입 등 '디지털 기반 임상 환경'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글로벌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과거엔 낮은 인건비와 건강보험 급여를 적절히 활용한 '하이브리드 임상'이 가능해 한국이 매우 매력적인 사이트였지만, 이제는 비용이 선진국 수준으로 치솟아 CRO들조차 고개를 내저을 정도"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정부 부처 간에 임상시험을 바라보는 간극에 대해 꼬집었다. '하이브리드 임상'과 같은 사례를 인정하지 않는 한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산업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는 "제약사가 모든 비용을 독박 쓰는 구조가 되면서 임상 단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환자 모집이 조금 빠르다'는 장점 하나에 기대기에는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상-급여' 연결고리 복원…'수익성 시장' 매력 높여야
따라서 업계 전문가들은 규제 혁신과 더불어 '한국 시장의 수익성'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미국 FDA가 신약 승인 시 자국민 임상 참여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하면서, 글로벌 제약사 본사가 한국에 배정하는 등록 인원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캡(Cap)'이 일

상화되는 상황에서 해결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환자 모집이 빨라도 본사가 정한 '쿼터'가 차면 더 이상 환자를 넣을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절벽 끝에서 현장 전문가들은 '초기 임상(Early Phase)'이라는 틈새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따. 물량전인 후기 임상(2·3상)은 국가별 쿼터와 규제에 민감하지만, 약물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하는 1상 단계는 비교적 이런 제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현재 모든 레지스트레이션(허가용) 임상에는 한국인 캡이 걸려 있어 넣고 싶어도 못 넣는 실정"이라며 "결국 전략을 초기 임상으로 선회해 본사가 캡을 씌우지 않는 '어리 디벨롭(Early Develop)' 단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구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결국 환자 치료 때문"이라며 "1상 임상은 명성보다 한 명의 환자에게라도 더 최신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도 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보다 적극적인 규제 개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연구 데이터만 제공하는 기지를 넘어, 신약이 원활하게 팔릴 수 있는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본사가 한국을 외면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연구는 한국에서 실껏 시키고, 정작 약은 급여 장벽 때문에 안 사주는 구조'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며 "식약처가 승인 속도를 높이는 것 만큼이나, 복지부와 심평원이 임상 성공 데이터가 곧장 환자 접근성(급여)으로 이어지는 '패스트트랙'을 활성화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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