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지역의사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지방 유학이 의대 진입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정부는 ‘지역 의료 공백 해소’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의료 현장과 입시의 최전선에서 바라본 이 제도는 과연 지역 의료를 살리는 ‘심폐소생술’인가, 아니면 공정성을 해치고 의료 생태계를 교란하는 ‘독배’인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농어촌 전형’ 위에 또 하나, 불공정의 제도화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제도의 설계가 자칫 특정 집단에게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는 ‘이중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논의되는 지역의사제가 기존의 ‘농어촌 전형’ 등 사회통합전형과 중첩 지원이 가능해질 경우, 심각한 역차별이 발생한다.
이미 농어촌 전형이라는 별도의 트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격을 갖춘 수험생이 ‘지역의사제 전형’까지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기회 중복’이다. 일반 수험생들은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 일부는 정책적 혜택을 업고 두 개의 동아줄을 잡는 셈이다. ‘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는 명분이 입시의 공정성, 즉 헌법적 가치인 기회균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면, 이 정책은 시작부터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10년 의무 복무? ‘정착’ 없는 ‘거쳐가는 정거장’ 될 뿐
“대치동을 떠나 지방으로”라는 구호는 현실을 모르는 낭만적인 서사다. 지역의사제가 강제하는 10년의 기간(수련 기간 포함)은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 지역에 뿌리내리는 ‘정착’을 담보하지 않는다.
의무 복무가 끝나는 순간, 대다수의 의료진은 자녀 교육, 생활 인프라, 그리고 더 나은 수익 구조가 보장된 수도권으로 회귀하거나, 비급여 인기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지역의사제는 지역 병원을 잠시 거쳐가는 ‘수련 정거장’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지역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날 ‘한시적 의사’가 아니라, 내 병을 꾸준히 봐줄 ‘숙련된 전문의’다.
‘인사 행정’ 아닌 근본적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
지방 의료가 무너진 원인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사가 그곳에 남을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환경 때문이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필수의료 저수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형사 처벌 ▲지방 병원의 열악한 인프라 등 핵심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입시 제도를 비틀어 숫자만 채우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이는 ‘의료 정책’이라기보다 기계적인 ‘인사 배치’에 가깝다. 정부는 입시판을 흔드는 미봉책을 멈추고 정공법(正攻法)을 택해야 한다. 지방 의료기관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 필수의료 의료진에 대한 확실한 사법적 보호 장치 마련, 그리고 지역 근무가 의사로서의 커리어와 경제적 보상 측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도록 수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공정하지 못한 입시 제도로 선발된 의사들이, 강제성에 묶여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와 깊은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지역의사제가 또 하나의 ‘입시 로또’ 논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의료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공정성을 훼손한 채 지역을 살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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