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인력난 심화로 의료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미래 의료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있어 의료 마이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지만, 아직 이를 위한 법 체계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이 원하는 진짜 의료혁신 토론회'에서 의료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 개선 과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 중요성 커지는 디지털 헬스케어 "경계 허물어야"
에이아이트릭스 김광준 대표는 발제를 통해 고령화와 의료 인력난으로 의료 패러다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이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핵심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부산에서 온 환자가 10분 진료를 위해 13시간을 소비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짚었다. 환자들은 유명 의사와 병원의 인지도를 이유로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하드웨어나 인력 부족이 아닌 신뢰와 정보 격차가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절반에 가까운 환자가 대리·전화 진료를 받고, 가정간호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도 조명했다. 고령화로 인해 다수 환자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요양시설에 머물고 있지만 외래 중심 진료는 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노인 환자 진료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수가 체계상 생산성이 낮아 노년내과에 신규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구조라는 것. 이렇게 노력으론 해법을 마련할 수 없는 구조라면 디지털 전환으로 효율성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의료의 비용·접근성·질의 '철의 삼각'을 깨뜨릴 수 있다고 봤다. AI 챗봇, 보이스 EMR, 음성인식(STT) 기술 등을 활용하면 반복적인 상담과 설명 부담을 줄여 의료진이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고령화 사회에서 원격·재택의료는 불가피하며, 세계적으로 이미 시장이 커지고 있어 한국만 규제로 막는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3분 진료를 위해 환자가 13시간을 쓰는 현실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초진·재진 구분보다 환자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미래 의료는 병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으며, 원격·재택의료와 AI 기반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비대면 진료와 홈케어는 의료 패러다임 변화의 전형적인 사례이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AI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며 "환자 중심 의료로 전환하려면 물리적 공간·시간적 제약 등 기존의 의료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화 시대에는 의료 접근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이 바로 디지털 전환"이라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시스템이 결국 경계 없는 의료를 구현하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의료 마이데이터 기반은 충분…이미 상용화돼
이어진 발제에서 카카오헬스케어 강은경 상무는 의료 데이터 발전 과정과 마이데이터 기반 서비스의 의미를 설명했다. 강 상무는 우리나라가 전 국민 의료보험 체계와 함께 빠르게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고 전했다. 1980년대 보험 청구와 업무 전산화, 이후 전자의무기록 도입으로 의료 기록이 모두 디지털화되면서 데이터화 기반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병원 경영 전략 지표와 임상 질 관리, 웨어러블 기기 연동 서비스까지 확장되며 의료 데이터 활용 영역이 다양화됐다는 것. 이런 발전이 토론의 출발점이자 향후 의료 혁신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강 상무는 의료 마이데이터를 공공과 민간 데이터가 연결된 '건강정보 고속도로'로 비유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데이터를 포함한 공공 영역과 병원 데이터 같은 민간 영역이 통합되면서, 환자가 동의할 경우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다.
특히 2025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계기로 환자가 데이터 주권자가 되는 체계가 마련됐으며, 카카오헬스케어는 마이데이터 선도 사업자로 선정돼 관련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것.
카카오톡 기반 '내가 먹는 약 안전하게' 서비스를 환자가 직접 동의해 데이터를 활용하는 구조로 만들어 접근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서비스는 환자가 복용 중인 약 정보를 확인해주고 약물 간 상호작용을 알려준다.
강 상무는 고령화에 따라 다약제 복용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환자 본인이 안전하게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서비스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진료·검사·처방 등 의료 데이터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 수집되는 라이프로그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제언이다.
체중, 혈압, 혈당, 심박수 같은 건강 지표뿐 아니라 걸음 수, 식사 패턴 등 생활 데이터가 의료 데이터와 연결될 경우 환자 관리의 정확성과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
이런 데이터 융합을 통해 환자는 자기 건강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의료진은 반복 업무를 줄이고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으며, 국가는 국민 건강 증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 상무는 "라이프로그 데이터가 의료 데이터의 공백을 촘촘히 메우면서 환자 건강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의료진은 환자에게 최적화된 진료와 처방을 내릴 수 있고, 비의료 영역에서는 생활 속 맞춤형 추천과 코칭 같은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 마이데이터는 환자가 자기 건강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의료진은 효율적으로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며 "국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추구할 수 있고, 기업은 환자·의료진·국가와 함께 시스템을 구축·지원하는 본질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AI·비대면진료 고도화 위해서도 마이데이터 필수"
이어진 패널토의에선 인공지능이 의료 인력난의 해법으로 부각했다. 의료인의 과도한 의무기록 업무가 환자 진료 시간을 잠식하고 있어, 음성인식·AI 에이전트 기반 자동기록 솔루션 도입이 대안이라는 것.
다만 이를 위해선 단속적 외래 중심 진료에서 벗어나 환자 생활 전반의 데이터를 활용한 연속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이를 위해 의료기록뿐 아니라 날씨, 활동량, 결제 내역 등 생활 데이터까지 통합해 맞춤형 치료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의료 마이데이터 활용 확대와 AI 도입 속도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규제와 검증 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다.
의료 마이데이터가 비대면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대두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국민 다수가 활용하는 일상적 의료 형태로 자리 잡은 만큼, 의료 마이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안전성·정밀성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
정부의 공공데이터와 의료기관 데이터를 환자의 동의 아래 조회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체계를 활용하면, 환자 데이터 단절을 막고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기술 발전과 법·정책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며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기반으로 한 방대한 데이터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행정 자료에 치중돼 있어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MR과의 연동 없이는 환자의 건강 수준과 진료 과정을 완결성 있게 분석할 수 없으며, 데이터 소유권 논란과 표준화 부재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는 것.
특히 무의촌 지역 고령층의 낮은 기술 접근성, 행위별 수가제 한계,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불신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원격진료가 제도화되더라도 지불제도 개편 없이 활성화되기 어렵고, 민간보험 활용에 따른 차별 가능성도 국민 불안을 키운다는 우려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은정 조사관은 "의료 데이터는 EMR과 연동해야 환자 상태를 온전히 볼 수 있는데 표준화 문제로 늘 막힌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데 제도와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라며 "무의촌에선 원격진료가 절실했지만, 고령층은 기기를 받아도 활용이 어렵고, 보건지소에서는 법 때문에 안내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 사각지대를 국회가 메워야 하는 이유다. 행위별 수가제로는 원격진료 같은 새로운 기술이 안착하기 어렵다. 지불제도 개편 없이는 집단 간 갈등만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각 주체의 시각 차이를 좁히고 법령 간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맞춤형 데이터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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