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학회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97명의 창립 회원으로 출발할 당시 오늘날 2천 명이 넘는 간질환 전문가들이 활동하는 국내 최대의 간 분야 학술 단체이자 세계적인 학술 단체로 자리 잡을 것을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간을 전문으로 진료, 연구한다는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고, 간질환은 일부 병원에서만 깊이 다뤘던 분야였기 때문. 게다가 수술을 제외하곤 변변찮은 간염 치료제조차 없는 그런 불모지 영역에서 막 첫발을 내딘 학회가 세계적 학술단체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만큼 지난 30년을 두고 "드라마틱했다"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학회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독립된 목소리를 내는 조직으로 성장하는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김윤준 대한간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을 만나 지난 30년의 의미와 향후 30년의 비전에 대해 들었다.
■"창립 당시 레지던트…드라마틱한 변화의 연속"
김윤준 이사장은 지난 30년을 드라마틱한 변화의 연속이라고 평했다.
김 이사장은 "1995년 학회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레지던트였다"며 "그때는 간을 전문으로 한다는 개념도 지금처럼 정립되지 않았고, 간질환은 일부 병원에서만 깊이 다뤘던 분야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학회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독립된 목소리를 내는 조직으로 성장하는 전 과정을 곁에서 볼 수 있었다"며 "마치 한 명의 신생아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과정은 행운이자 드라마틱한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했다.
학회의 성장은 간질환 치료의 진보와 함께했다. 치료제가 없던 시절, 간염은 결국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B형 간염 치료제는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수준이었고, C형 간염은 손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과의사로서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병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 이사장은 "간암이 생기면 항암제도 거의 없고, 내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게 불과 20~30년 전"이라며 "지금은 C형 간염은 완치가 가능하고, B형 간염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돼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WHO의 2030년 간염 퇴치 목표도 이젠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짜로 도달 가능한 현실이 됐다"며 "치료 관련 환경이 변하면서 연구도 활성화되고, 예후도 상승하는 변화의 연속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B형 간염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는 1998년 라미부딘을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아데포비어, 엔테카비르, 테노포비르,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개발까지 급물살을 맞았다. C형 간염도 혁신적 치료제(DAA)로 꼽히는 소발디, 하보니, 마비렛 등으로 완치율 95% 이상을 기록했고, D형 간염 역시 2020년 유럽 EMA가 부레티델를 조건부 승인하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치료 환경의 변화를 신약이 이끌었다면, 학회 변화의 중심에는 지속적인 학술 활동과 국제적 네트워크 확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간학회의 공식 학술지 'CMH(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
김 이사장은 "CMH은 완전히 국제 학술지로 자리 잡아 전 세계에서 연간 1000편이 넘는 논문이 투고되고, 게재 승인은 10% 초반대로 굉장히 경쟁력 있는 저널로 성장했다"며 "실제로 CMH는 2023년 Impact Factor 14점으로 현재 간 분야 세계 학술지 가운데 6위이자 국내 1위, 아시아 1위 저널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 저명한 연자들, 교수들도 CMH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경쟁한다"며 "그런 과정에서 외국 연구자들과 네트워크가 생기고, 편집 위원들과의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공동연구도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30년간의 최대 연구 성과로는 C형 간염 국가검진 사업의 토대가 된 각종 연구를 꼽았다. 2021년 학회 주도로 시작된 국가검진 시행의 당위성을 살핀 연구들은 비용-효과성 근거를 토대로 정책 입안자들을 설득한 끝에 올해부터 본사업이 시행됐다.
"C형 간염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어렵습니다. 진단받을 때는 이미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아요. 검진이 답이지만 비용 문제가 컸죠. 학회는 실증 연구를 통해 국가 검진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제시했고, 복지부와 긴 시간 설득하며 결국 제도화를 끌어낸 겁니다. 단순히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차원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학회의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죠."
학회의 영향력이 학문적 울타리를 넘어 국가 정책으로도 확장된 사례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2060년엔 간염 박멸"…향후 30년 과제는
아쉬운 점은 없을까. 간염밖에 모르던 대중들이 비알코올성 지방간부터 간암 등 다양한 간질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치료 의향에 대해선 소극적 분위기다.
그는 "지방간이 흔하다고 해서 가벼운 병은 아닌데 여전히 '직장인 중에 지방간 없는 사람이 어딨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며 "특히 술을 즐겨 마시는 문화나 회식 문화가 이런 인식에 일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방치된 지방간은 간염,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고 간암 역시 조기 진단하면 완치율이 높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자각 및 검진 필요성 인식이 중요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C형 간염이 완치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B형 간염 보유자가 효과적인 치료 시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치료 인지율 제고는 과제"라고 했다.
이에 간학회는 매년 '간의 날'을 비롯해 다양한 공공 캠페인, 대국민 강좌, 라디오 방송,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인식 개선에 힘써왔다는 것. 김 이사장은 "아무리 중요한 행사와 연구가 있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공회전에 불과하다"며 미디어와의 지속적인 접점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간학회를 '서른 살 청년'에 비유했다. 열정은 넘치지만, 동시에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미다. 혈기왕성한 학회라곤 하지만 언젠가 학회도 부침을 겪는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학회의 고령화 추세는 풀어야할 숙제다.
김 이사장은 "학회 임원부터 주요 연구자들까지 고령화 추세에 접어들었다"며 "30대 보다는 40대 50대의 비중이 높고 이런 추세는 대한민국의 인구 연령 비중과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신진 연구자, 간학회를 주도할 젋고 유능하고 포부가 큰 사람들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 과제"라며 "젊은 연구자 지원사업 등으로 학회를 이끌어갈 세대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간질환 분야는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치료가 가능해졌고, 질병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시대가 됐다. 그가 바라보는 향후 30년은 어떤 모습일까.
김윤준 이사장은 "WHO가 내건 2030년까지의 간염 종식은 실패한 것이 아닌 단지 지연된 목표로 2060년에는 반드시 없어져 역사책에만 존재할 것으로 본다"며 "간암부터 지방간까지 다양한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간질환의 치료와 접근법도 현재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간 학회가 지적 행위, 지식 공유를 위한 단순한 전문가 모임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질병을 극복해가는 파트너로 사회공헌에 앞장서 왔다는 것"이라며 "연구, 임상, 학술 등의 균형이 잘 맞아 돌아가면 불가능해 보이던 미션도 완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