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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얀 가운을 입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박유진 학생
발행날짜: 2022-05-09 05:10:00

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본과 3학년)

본과 3학년이 되어 처음 병원 실습을 돌던 날.

나는 준비된 하얀 백지 같은 상태라기보단 온갖 의학 지식이 뒤섞인 채, 드디어 실습을 돈다는 기대감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한데 모인 복잡한 회색 빛 종이와 같은 상태였다.

실습은 생각만큼 힘들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혼이 나기도 하고 오히려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만, 병원이란 곳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과 관찰이 필요한 건 분명해 보였다.

대학 병원은 일종의 '국가'와 같다. 병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서와, 과들이 존재하며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감시하기도 하는 탄탄한 조직 체계가 존재한다. 중요한 건 의사들이 모든 걸 다 결정하고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외래를 볼 때도, 회진을 돌 때도, 컨퍼런스를 할 때도, 심지어 약을 처방할 때도 항상 그 옆엔 약이 잘 맞게 들어가는지, 소독은 제대로 되어있는지 확인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시고 시술을 할 땐 해당하는 검사에 따라 방사선사 기사님들이 계신다.

의사가 진단과 처방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준비된다. 의사는 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주변 상황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병원에 가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의사가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아침 회진을 참관하다 교수님이 환자와 간호사 사이 갈등을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환자의 주치의인만큼 환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같이 일하는 식구인 간호사 선생님도 마음 상하지 않게 환자에게 잘 설명하시는 모습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진단과 치료, 그리고 환자와의 라포 형성이 의사에게 다인 줄만 알았던 나는 '아 의사는 이런 직업이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의사가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처방을 내릴 때 '이게 과연 최선일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신중히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자신의 손에 달린 생명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책임감. 의사라면 누구나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책임감엔 환자 치료에 대한 책임도 들어가겠지만 의사의 언행에 대한 책임도 상당하다. 어릴 때야 잘못을 하고서도 부모님한테 혼나기 싫어 거짓말을 했다지만, 의사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이건 의료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의사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환자를 더 좋게 만들 수도, 나쁘게 만들 수도 있기에 한 번 더 환자에게 귀 기울이고 한 번 더 환자의 말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자신의 결정과 판단에 따라 누군가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때때로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 교수님이 '내가 다시 태어나면 의사를 선택할까? 나는 안할 것 같아. 책임감이 상당하거든' 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실력은 물론이고 환자들도 굉장히 잘 따르는 분이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 사실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아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별개로 또 다른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의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최근 의료 소송이 많아지다 보니 여러 판례들을 통해 여기까지는 의사의 몫, 여기까지는 환자의 몫이라고 딱 선을 긋는 수준이 되어버린 상태다. 환자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의사이고, 매순간마다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의사인데, 정작 의사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할 지에 대한 기준을 배우는 곳은 법원이라는 것이 나에겐 아이러니했다. 소송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책임지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의사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의사의 책임일 순 없다. 책임질 수도 없고.

하지만 그래도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맡고 있는 사람이기에, 오늘도 환자에게 아픈 곳 없는지 한마디 더 묻고, 이겨낼 수 있다고 진심이 담긴 한마디를 더 건네고, 잘해보자고 건네는 악수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보내는 것이 더 필요할 때는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이대로 의사가 될 준비가 되었을까? 의학적 지식을 떠나서 지금 나의 행동, 나의 생각 하나하나는 앞으로도 쉽게 바꿀 수 없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있을지,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의사가 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나날들이다.

나는 과연 하얀 가운을 입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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