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화문 민중총궐기대회와 관련해 의료인들의 침묵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쓴 의대생이 주목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연대원주의대 본과 1년에 재학 중인 고은산 씨(22). <메디칼타임즈>는 2016년을 맞아 의식있는 의대생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연대원주의대 캠퍼스에서 만난 고은산 씨는 당장 의과대학 진급을 걱정하는 평범한 의대 본과 2년생이었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달변가로 돌변했다.
급변하는 의료현실에 대해서도 주관이 확고했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도 이제는 근로자임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전공의 특별법 제정이 아닌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근로환경을 요구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왜 근로자가 아닌가?"
"197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근로자들은 수면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근무했다. 국위선양을 위한 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받던 때였다. 지금의 의료현실도 비슷하다. 한국 의료가 세계적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의사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 않나."
고은산 씨는 지금의 의료 현실을 70년대 노동자들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며 이에 대한 해법은 전공의 즉, 의사가 노동자임을 자각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제정된 전공의 특별법 제정은 환영하지만, 그에 앞서 의사도 근로기준법 및 노동법에 준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선 아쉽다고 했다.
또한 그는 과거와 현재, 달라진 의사의 위상에 대해 비교하며 의사도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의사들은 리베이트, 주사기 재활용 등 모든 이슈에 대한 결론을 의료수가에서 찾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수가 탓만 하겠나. 의사도 다른 것을 요구할 때가 됐다고 본다."
그의 비유는 이랬다. 과거의 과외 선생님은 희귀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래서 굳이 노동자일 필요가 없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고 경제적 기반을 탄탄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의료현실은 더 이상 과거의 의사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앞으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될 지금의 의대생에겐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의사가 과거처럼 '선생님'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공감하는 것처럼 '의사=노동자'가 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받아들 때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와 싸울 게 아니라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인 즉 '의사=노동자'라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을 벗고, 근로자의 권리를 내세워 수십 년째 답도 없는 수가 인상 이외 다른 방안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은산 씨는 한발 더 나아가 의과대학에서 근로기준법에 대해 공부해야한다고 했다.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넘어 개원을 했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간혹, 종합병원이나 동네의원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선배들 얘길 듣다보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놀랄 때가 많다."
예비 의사의 상당수가 병·의원장이 되는데 근로기준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의과대학 과정에만 충실한 의사가 병원을 운영할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치료하는 의사 되고 싶다"
그렇다면 의대생 고은산 씨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당장은 유급을 피하는 게 목표다. 앞으로 전공은 정신건강의학과를 하고 싶지만 성적이 될 지 의문이다. 또 응급의학과나 가정의학과도 하고 싶다."
그가 응급의학과나 가정의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는 집회 현장에서 별도의 도구 없이 응급 조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의 이름을 알렸던 광화문 집회 대자보와 맥을 같이하는 셈이다.
예과시절, 세월호 집회 당시에도 현장에서 화단에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는 시민을 보고 구급차를 부르는 게 전부였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
"할 수만 있다면 인의협과 같은 단체를 만들어 집회현장에서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돈 벌이가 안되니 직업이 될 순 없겠지만, 활동은 할 수 있지 않겠나."
은산 씨가 중고교시절 품어온 의사상은 '지는 사람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다.
그래서일까. 그의 졸업 후 계획은 서울 등 수도권 진출을 꿈꾸는 여느 의대생과 달랐다.
"집은 서울이지만 졸업 후 원주에 남아 이 지역에 필요한 의사가 되고 싶다. 서울에서보다 여기에 남은 것이 내가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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