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재택의료'를 핵심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환자가 살던 집에서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비전은 가장 결정적인 한 지점에서 막혀 있다. 바로, 환자의 집으로 갈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전국의 재택의료센터들은 "방문진료 의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의사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가가 턱없이 낮고, 의사 1인당 월 100건까지만 진료할 수 있도록 묶어둔 상한선은 센터의 총매출 한계를 명확히 그어버린다. 병원 입장에서는 총매출이 낮으니 의사에게 높은 월급을 줄 수 없고, 의사 입장에서는 낮은 월급을 받으며 그 험난한 길을 나설 유인이 없다. 이 완벽한 악순환의 고리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제는 간단해 보인다. 수가를 올리고 100건 상한을 풀면 의사들이 몰려들까?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돈'이 정말 문제의 전부일까?
물론 현재의 수가는 의사의 이동 시간, 중증·복합 환자 관리의 난이도, 열악한 현장 환경에서 감수해야 하는 감염 등의 위험을 전혀 보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지금의 수가로 주 3일 정도 파트타임 근무를 한다고 가정할 때의 월급이, 다른 일자리에 비해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재택의료를 외면하는 데는 돈보다 더 무거운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높은 기회비용'이다. 의사는 같은 시간 동안 병원 내 외래 진료실에서 훨씬 더 많은 환자를 효율적으로 볼 수 있다. 이동 시간이 없고, 모든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며, 위험 변수가 통제된다. 반면 재택의료는 진료 시간보다 이동과 행정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고, 환자의 집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홀로 노출된다. 재택의료를 선택한다는 것은 이 모든 효율성과 안정성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업무의 강도와 본질'이다. 재택의료 대상자는 대부분 거동이 불가능한 와상 환자, 중증 장애인, 말기 암 환자다. 의사는 이들의 의학적 문제뿐 아니라, 위태로운 가족 관계, 열악한 주거 환경, 복잡하게 얽힌 사회·복지 문제까지 마주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진료가 아닌 '총체적 돌봄'이며, 극도의 감정 노동을 수반한다.
구조적 해결책: 팀 접근과 사업 모델 다각화
물론 이러한 운영상의 어려움을 일부 완화할 방법은 있다. 의사가 모든 짐을 지는 현재의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 의사가 진료라는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방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행정 코디네이터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의사가 환자의 의학적 문제를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면, 간호사는 처치와 모니터링을, 사회복지사는 장기요양보험 연계나 복지 자원 발굴을, 코디네이터는 방문 일정과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분업 모델이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재택의료센터 역시 '방문진료료'라는 단일 수익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가정간호, 완화의료, 장애인 주치의 사업 등을 연계하여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고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의사에게 합당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
근본적인 질문: 의사는 왜 재택의료를 꿈꾸지 않는가
하지만 이 모든 운영적, 재정적 해법을 뛰어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의사의 '직업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나는 커서 재택의료 의사가 될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고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는다. 우리의 롤모델은 응급실에서 생사를 가르는 환자를 살려내고, 수술실에서 암 덩어리를 완벽하게 제거하며, 중환자실에서 최첨단 생명 유지 장치를 다루는 교수님들이다. 의학의 발전은 곧 CT, MRI, 로봇 수술과 같은 '첨단 기술(High-tech)'의 발전과 동일시된다. 우리의 정체성은 '급성기 병원의 해결사(Cure)'로 맞춰져 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의사에게 '재택의료'는 어떻게 비칠까? 첨단 장비 대신 청진기 하나와 환자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의존하는 '저기술, 고맥락(Low-tech, High-context)'의료. 극적인 '치료(Cure)'가 아닌, 환자의 남은 삶을 고통 없이 관리하는 '돌봄(Care)'. 모든 것이 통제된 병원이 아닌, 환자의 '집'이라는 사적 영역. 질병의 해결사가 아닌, 환자와 가족, 그리고 수많은 복지 자원을 연결하는 '조율자'.
이 거대한 간극 앞에서 재택의료는 의사들에게 '매력적인 커리어 패스'가 아닌, 병원 중심의 주류 무대에서 밀려난 이들이 선택하는 '비주류' 혹은 '숭고한 봉사' 정도로 여겨지기 쉽다.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10년 넘게 그토록 어렵게 공부했나"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좋은 의사'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때
초고령사회는 우리에게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물론 첨단 의료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의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만성질환자와 노인 환자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마지막까지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다.
재택의료 의사 채용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기댈 수도 없다. 우리가 의대 교육 과정에서부터 '지역사회'와 '돌봄'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의사를 병원 교수만큼이나 훌륭한 '롤모델'로 제시하지 않는다면, 재택의료의 미래는 없다.
수가 인상과 제도 개선이라는 하드웨어의 변화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좋은 의사'에 대한 우리의 낡은 인식을 바꾸는 '소프트웨어'의 혁신이다. 병원의 높은 담장을 넘어 환자의 삶 속으로 들어갈 새로운 세대의 의사들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지역사회 통합 돌봄은 구호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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