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등 미래 기술로 의료 환경이 급변하면서 의료윤리에 대한 의사들의 고민이 본격화하고 있다. 의정 사태를 겪으며 국민과 의사 간의 신뢰 손상 등 여러 윤리적 딜레마가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더욱이 의사 본연의 전문성을 해치는 현안이 계속되면서, 인간 존엄과 환자 가치에 대한 윤리적 논의 필요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고찰과 토론을 이어가는 단체가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을 만나,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입장과 해법을 들어봤다.

■의대 증원 사태 "윤리적 명분 상실한 양적 확대"
문지호 회장은 전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과 관련해 "윤리적 명분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질 저하와 지역·필수의료의 균형 붕괴가 불 보듯 뻔했기에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역 의료 공백을 단순히 의료인의 책임 회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행정·제도적 문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의료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사회 계약 위반'이라는 설명이다. 의료인의 책임은 정부가 환자 안전에 대한 확신을 줄 때 발휘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전 정부의 정치적 접근으로 국민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낭비했음에도, 사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이번 사태로 국민과 의사 간 신뢰가 깨진 것도 뼈아프다. 문 회장은 의료란 사회의 신뢰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의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한 양적 확대를 시행한 결과,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됐다는 것.
문 회장은 현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지역·필수의료 종사 의료진에 대한 양질의 윤리교육 및 인센티브 제공 ▲의과대학 및 전공의 과정에 지역책임·필수의료 책임 명시 및 수련 프로그램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의사에 대한 만족도는 의사 수에 있지 않다. 핵심은 역량 있는 의사를 얼마나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가이다. 의사 역시 환자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 때 만족할 수 있다. 이것이 전문직 윤리의 핵심"이라며 "전문직 윤리가 내면화돼야 지역·필수의료에 헌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를 위해선 경제적 인센티브와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이 사회 계약의 근간임을 잊지 말고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의대 또는 전공의 과정에 지역·필수의료 책임을 명시하고 수련 프로그램을 계획해야 한다"며 "수련 과정이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양성이 되는 특별한 시간이 돼야 한다. 이런 제도적 지원이 이뤄질 때 지역·필수 의료를 위한 새로운 의사 유입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 의대·의료기관 의료윤리 교육에 미흡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의대에 의료윤리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한 학기 강의나 외부인 특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교육의 질·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진료 현장의 복합적 윤리 문제에 대비한 사례 중심 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관련 대책으론 ▲입문 단계부터 연속성 있는 윤리교육 커리큘럼 마련 ▲사례 기반 윤리 토론 및 워크숍 진행 ▲병원 윤리위원회 의료기관 내부 윤리 지원 체계 강화 등을 제시했다.
문 회장은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의료의 가치가 훼손된 지금,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직 윤리 등의 주제가 초기 교육에서부터 내면화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의료인들이 토론하며 윤리적 지향점을 놓치지 않고 해결 방안을 찾는 방식이 중요하다. 또 윤리위원회의 결정·권고 사항이 실제 현장에서 실제로 반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AI 시대 "의사와 환자 기술에 종속되지 않아야"
의료에 인공지능 도입이 가속화 하면서, 의료인의 인문학적 소양도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의사의 윤리적 성찰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게 문 회장의 진단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의존도가 커져 환자가 소외된다는 이유에서다. AI의 등장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는 것.
문 회장은 인문학은 의료인으로 해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고, 인간 중심 돌봄을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AI가 진단·치료 보조 역할을 하더라도, 윤리적 판단·가치 평가라는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좋은 진료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AI의 교과서적인 제안은 환자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때 인문학적 소양은 AI 답안을 마냥 따르는 것이 아닌, 환자의 삶과 존엄을 고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에 연구회에선 기술 적용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돌봄의 존엄과 생명·죽음에 대한 철학을 논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문 회장은 "의료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모든 의료 행위는 '인간 존엄'에 대한 책임 아래 있다. 따라서 기술이 주는 가능성 앞에서도 윤리가 이끄는 방향을 놓쳐선 안 된다"며 "인문학은 단지 교양이 아니라 의료인의 정체성과 책임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기술 시대일수록 그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들의 SNS 사용 증가도 변화한 의료 환경의 예시 중 하나다. 과거 SNS가 병·의원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타 병원을 비방하거나, 완치·부작용 0% 등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문제 사례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2021년 대한의사협회가 ▲환자 진료 기록 등 개인정보 철저히 보호 ▲근거 없는 의학 정보 제공 지양 ▲전문가로서 권위·품위 유지 등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자정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봤다.
더욱이 AI가 활성화로 좋은 의료 정보는 빠르게 공유되고, 엉터리 정보는 오히려 지탄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 환자 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알리는 댓글 정화 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상 플랫폼이 활성화하면서, 이를 통해 과잉 홍보 영상을 찍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들 플랫폼에 대해서도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했는지 ▲선행과 악행 금지의 원칙을 지켰는지 ▲의료의 정의가 지켜졌는지 등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문 회장은 "의협에 의료 영상 제작 가이드라인 제작을 건의할 생각이다. 1인 미디어 시대에 좋은 영상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질 낮은 광고·홍보 행위가 발견될 때마다 공론화해 어떻게 의료윤리를 훼손하였는지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좋은 자율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의사 정체성 "생활인 돼선 안 돼"
문 회장은 의사들이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고 진단했다. 의사들에게 내재된 책임감을 허문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의사들로 하여금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성과 권위를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의사는 수익을 좇는 생활인으로 전락한다는 우려다.
문 회장은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윤리교육·자율 규제 체계를 마련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모든 의사가 '좋은 의사·신뢰받는 전문가'로서의 자신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또 지속적으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 의료 정책·기술 변화 속에서 '생명 존중'과 '의료인의 전문 책임'이라는 윤리적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의료 현장의 실제 사례와 맞닿은 윤리 연구 및 정책 제언으로 의료윤리의 실천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독립적인 의사 면허 관리 기구 출범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회장은 "기술을 넘어 의료윤리가 의료의 핵심 가치로 부각되는 현실이 됐다. 의사가 생활인이 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직업성을 공고히 세워 국가의 중요한 축을 지키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며 "의료의 중심은 '생명'을 지킨다는 것이다. 의료윤리의 궁극적 지향점은 의료의 대상인 '인간의 생명'을 존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윤리의 가치가 확산될 때 대한민국에 생명 경시 현상이 발붙이지 못한다. 유아나 노약자나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생명이 있는 것만으로 귀하게 여김을 받게 될 것"이라며 "국민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시점까지 존귀한 인간으로 돌봄을 받게 하는 것이 연구회의 궁극적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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