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이 어린이의 자폐증 및 ADHD와 같은 신경 질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증거를 반영하기 위해 라벨 변경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FDA
-"현재 자폐증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 사이의 가능한 연관성을 확인하는 결정적이고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WHO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모두 '증거(evidence)'를 두고 맞섰다.
임신 중 가장 흔히 쓰이는 해열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상품명 타이레놀)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된 가운데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논란에 불을 붙인 것.
미국 FDA가 경고성 메시지에 덧붙여 라벨 변경 행정 절차까지 예고하자 세계보건기구는 불과 이틀만에 이를 정면 반박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모두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 증거를 두고 상반된 해석 및 입장이 나온 이유는 뭘까. 핵심은 연관성(association/correlation)과 인과관계(causation)의 혼동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논란의 발단된 보스턴 관찰 연구
논란의 시작은 일련의 관찰연구다. 대표적인 것이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2019년 JAMA Psychiatry에 게재한 분석(doi:10.1001/jamapsychiatry.2019.3259).
FDA는 해당 연구를 인용해 "최근 몇 년 동안의 증거에 따르면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및 ADHD와 같은 상태의 후속 진단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연구는 미국 보스턴 출생 996명의 산모-자녀 쌍을 추적하며 탯줄 혈액에서 아세트아미노펜 대사체를 측정했다. 연구 설계는 코호트였고, 평균 10년 이상 추적했다. 그 결과 농도가 높은 상위 3분위군에서 ASD 및 ADHD 진단 위험이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태아 탯줄에서의 아세트아미노펜 바이오마커는 용량 반응 방식으로 소아 ADHD와 ASD의 위험이 현저히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며 "연구 결과는 산전 및 산전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소아 신경 발달 위험 간의 연관성에 관한 이전 연구를 뒷받침하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2019년 공개된 간호사 건강 연구 II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DOI: 10.1093/aje/kwy288).
간호사 건강 연구 II 코호트에 등록된 여성들 중 1993~2005년 출생한 8,856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산모의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ADHD 사이의 연관성을 평가한 결과 임신 당시 아세트아미노펜 사용 시 소아 ADHD(odds 비율 = 1.34)와 관련이 있었다.
■연관성-인과관계 혼동 가능성 '고개'
일면적으론 아세트아미노펜의 사용이 자폐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해당 연구들은 노출군과 비노출군의 차이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한 산모는 대개 발열, 감염, 두통 등 다른 건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이 요인 자체가 태아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즉 노출군 자체가 산모의 발열과 같은 '다른 조건을 가진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교란 요인이 존재하면, 관찰된 통계적 연관성이 곧바로 약물의 인과적 효과로 해석할 가능성이 생긴다. 두 현상이 함께 발생한다고 해서 한쪽이 반드시 다른 쪽의 원인이라는 보장은 없다.
통계학 교과서에서 즐겨 쓰는 비유가 '아이스크림과 익사'다. 여름철에 아이스크림 소비가 늘어나고 물놀이가 많아지면서 익사 사고도 증가한다. 아이스크림 소비 증가와 익사 사고 증가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이 익사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아세트아미노펜 연구도 마찬가지. 약물을 복용하는 산모는 복용하지 않은 산모와 건강 상태가 다르며, 이 차이가 ASD 발생 위험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연관성 발견만으로는 '타이레놀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 '형제-자매 비교 분석(sibling control analysis)'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를 비교하면, 유전적 요인과 가정환경이라는 강력한 교란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
실제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돼 JAMA에 2024년 공개된 바 있다(doi:10.1001/jama.2024.6042).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란 요인을 없애자 자폐증 유발 위험은 사라졌다.
브라이언 리 교수(드렉셀대 역학)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진은 1995~2019년 사이 출생한 250만 명의 아동을 20년 이상 추적했다. 연구 설계는 전국 인구 기반 코호트로, 처방 기록과 모자 건강기록을 활용했다.
이 역시 초기 분석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복용 산모의 자녀에서 ASD, ADHD, 지적장애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높게 관찰됐지만 형제-자매 비교 분석을 적용하자 이러한 연관성은 소실됐다.
즉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 중 노출 여부만 달랐을 때는 위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연관성은 관찰되지만 인과관계는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선행 보스턴 코호트가 996쌍의 부모-자식 분석에 그쳤다면 형제-자매 비교 분석은 250만 명이라는 방대한 대상을 추적 관찰했다.
형제 비교 설계는 기존 연구가 안고 있던 유전·환경적 교란 요인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연구 중 가장 강력한 반증 증거로 평가된다.
■한국인은 안전할까? 일본 코호트 연구 '방향타'
이와 유사한 결과는 일본에서도 확인됐다. 논란이 있기 한달 전 공개된 최신의 연구이자 21만 7,602명의 대규모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다(doi.org/10.1111/ppe.70071).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에 발표된 일본 연구는 전국 인구 기반 코호트에서 약 20만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신경 발달 결과를 추적했다.
이 연구에서도 초기 단순 분석에서는 ASD 위험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형제-자매 비교를 적용하자 연관성은 사라졌다.
특히 일본은 아세트아미노펜 복용률이 약 40%로 스웨덴 연구(7.5%)보다 훨씬 높았지만, 결과는 동일했고, 서로 다른 문화·보건 시스템에서도 같은 결론이 재현됐다는 점에서 신뢰도를 강화한다.
연구진은 "PS 매칭 분석에서는 위험이 약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노출 오분류에 대한 확률적 편향은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으로 인한 과대평가를 시사한다"며 형제 비교가 인과 추론의 강력한 도구임을 재확인시켜줬다.
아세트아미노펜 논란을 다룬 연구는 40편 이상 존재한다. 하지만 연구 설계와 교란 변수 통제 수준에 따라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대체로 단순 관찰연구나 회상 기반(self-report) 연구는 연관성을 보고하는 반면, 형제 비교나 정밀한 교란 통제를 적용한 연구는 인과성을 지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이 "큰 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 설계"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 대규모 코호트라도 교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엉뚱한 해석과 이를 기반으로 한 그릇된 행정적 절차를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일부 관찰연구에서 임신 중 호두 섭취가 아이 IQ를 높인다는 연관성이 보고되고, 1980~90년대 관찰연구에서 폐경 여성의 HRT 사용과 심장병 감소 연관성이 보고됐지만 이후 연구에선 부정된 바 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와 모체태아의학회(SMFM)는 최근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인과적 증거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광범위한 연구에도 일관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FDA도 의사들에게 발송한 안전성 서한에서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 간의 연관성이 많은 연구에서 보고되기는 했지만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학계에는 상반된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FDA는 "이 연관성은 여전히 과학적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며, 임상 의사들은 특히 대부분의 임신부 및 영유아에서 나타나는 단기적인 저열성 발열에는 약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진료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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