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이인복 의약학술팀 기자
이인복 기자 (news@medicaltimes.com)
기사입력 : 2020-11-2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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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 "더는 못버틸 수도 있겠어요. 당장 안하면 대금을 안준다는데 이걸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요."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대리 입력을 요구받은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 임원이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던 기업이었지만 불과 6개월만에 수건을 던질 상황에 몰린 것. 의료기기 기업 중 사실상 마지막 저항선이 무너지게 된 셈이다.

불투명한 의료기기 유통 구조를 개선해 사후 처리 등을 명확히 하겠다는 목표로 시행된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제. 사실 제도의 시작점에서 이 취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일정 부분 업무가 가중되는 측면이 있다해도 제조사와 수입업체로부터 도매상, 소매상, 간납사 등으로 넘어갈때 기기의 공급 내역을 면밀하게 체크해 추적 관리의 용이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된지 불과 1년. 지금은 도대체 왜 이 제도를 만들었냐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실제 유통 현장에서 쉴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차라리 폐지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하다. 모든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사실상 게이트키퍼 바로 간납사다.

제도의 취지대로라면 제조사와 수입업체가 도매상 등에 물건을 넘길때 공급 내역을 보고하고 도매상이 소매상으로 넘길때, 최종 관문인 간납사가 의료기관에 납품할때마다 내역이 보고돼야 한다.

현실은 어떨까. 지금의 공급내역은 모두 제조사와 수입업체가 적어내고 있다. 기기가 넘어갈때마다 하나하나 공급 내역이 보고돼야 하지만 그 모든 작업을 한 곳에서 몰아 쓰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왜 이 모든 업무와 책임을 떠맡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도 너무나 명확하다. 간납사가 가진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그들의 권력은 각 제조사와 수입업체에 보낸 공문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명목은 협조 공문이지만 공공연하게 랜딩(신규 납품)에 불이익, 대금 지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알아서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이러한 권력을 사용하겠다는 공공연한 협박이다.

당연히 이러한 협박을 받은 의료기기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제도를 시행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보건복지부 등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그 사이 그들의 권력은 더욱 날이 서기 시작했고 구원을 기대하던 그들은 하나둘씩 그 협박에 굴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제도를 기획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처벌을 유예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문제점을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당장 12월이면 유예가 끝나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개선책은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자금 여력과 원천 기술 덕에 마지노선을 지키며 저항하던 다국적 기업들까지 수건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제도를 마련한 정부가 손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더 버티겠냐는 하소연이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제도가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한 지속적인 보완과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애초의 목표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불과 한달 뒤 정부가 예고한 사실상의 시범사업 기간이 마침표를 찍는다. 과연 칼집에서 나온 행정처분이라는 제도의 칼날이 어느 곳을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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