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 중소병원을 살려야한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그 근거를 잘 모르겠다."
지난 23일, 의료전달체계 개편 관련 토론회에서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조실장이 의료전달체계와 관련해 내뱉은 말이 의료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의사협회 대변인에 서울시북부병원장을 지내며 1, 2차병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왜 독기를 품은 듯 이처럼 말했을까. 지난 24일, 국립중앙의료원 집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현재 기관간 의료전달체계에서 의사간 전달체계로 전환해야한다"며 더욱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했다. 의원간 회송수가를 허용하는 등 지금의 논의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자는 얘기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번만큼은 과거의 의료전달체계에서 벗어나보자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말 뿐인 환자중심 논의…이래선 또 실패한다"
다음은 권용진 기조실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지난 23일 메르스의료연대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 발언은 개원가는 물론 중소병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 민감한 발언이라는 것을 잘 알텐데 이 같이 말한 이유가 뭔가.
A: 일단 내 주장의 전제조건은 서울의대 김윤 교수와 한림의대 조정진 교수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다만, 그날 세미나 주제는 의료소비자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를 논의해보자는 자리였던 만큼 철저히 환자 입장에서 의료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Q: 역설적인 표현이었다는 의미인가.
A: 그렇다. 내가 왜 한국 동네의원의 우수성을 모르겠나. 미국 등 세계 어느국가보다 뛰어난 의료진을 싸고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안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논의에서 그런 얘기는 의미없다. 한국의 환자들은 동네의원을 외면하는 게 현실이지 않나.
Q: 좋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의료전달체계 논의를 어떻게 해야한다는 얘긴가.
A: 나 또한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만, 의료공급자 중심으로만 진행되는 지금의 의료전달체계 논의 흐름을 환자 중심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왜 그래야 하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제도만이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번 논의는 의료계에 수가 몇푼 올려주고 끝나선 안된다. 환자가 왜 동네의원을 외면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그들이 새로운 의료전달체계에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Q: 그래서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다양한 직군을 포함해 논의하고 있지 않나.
A: 그런 얘기가 아니다. 세미나에서도 수가 관련 논의가 진행됐을 뿐 어느 누구도 '환자가 왜 동네의원, 중소병원에 가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환자는 1, 2차를 거쳐서 3차병원을 가야한다는 일방적인 주장만 있을 뿐 왜 그래야 하는지, 실제로 그것이 비용대비 효과적인가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지 않다. 말뿐인 환자 중심 논의에 그치고 있다.
Q: 도대체 환자중심 의료전달체계 논의라는 게 어떤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A: 현재 의료전달체계를 보자. 의사는 전문지식과 윤리의식을 갖추고 있으니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을 강요한다. 1차에서 의사가 모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면 가라는 식이다. 환자는 목숨이 걸린 선택이다. 믿을 만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의사가 시키는 데로 하기엔 환자들이 똑똑해졌다. 정부도 의사도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없는게 현실이다.
다시한번 묻고 싶다. '대학병원 홈페이지에는 교수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정보가 쏟아진다. 그런 의료진을 두고 왜 환자는 동네의원을 가야하나?' 그들이 1, 2차 병원을 가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겠나.
Q: 그럼 의사는 어때야 한다는 얘긴가.
A: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다. 환자가 왜 의료전달체계를 따라야하는지, 왜 의사의 말을 신뢰해야하는지 그들이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수교육 연 8시간하고 있으니 믿어달라? 의사윤리지침에 '의사는 윤리적이어야한다'라고 명시돼 있으니 믿어달라는 식으론 안된다.
한국 국민은 믿음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나. 웬만해선 신뢰를 주기 힘들다. 그만큼 더 윤리적이고 질적으로 입증을 해서 눈으로 보여줘야한다. 더 이상 정부가 강행하는 의료정책은 답이 없다.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길하고 싶은 것이다. 다들 지켜봤지 않나. 사회적 합의가 없는 제도는 실패한다는 것을…
"의료전달체계,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Q: 자, 먼길을 돌아왔다. 그렇다면 권 기조실장이 생각하는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는 어떤 모습인가.
A: 좋다. 얘기해보겠다. 기관간 전달체계를 의사갈 전달체계로 바꿔야한다. 한국은 전문의에 세부전문의까지 마치고 나온 의사가 1차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를 치료할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 이를 왜 제한하나. 시설과 장비 등 기준을 갖췄다면 종별과 무관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지 않나.
동네의원간 의료회송수가 즉, 내과의원에 온 환자를 옆에 흉부외과의원으로 전원했을 때 회송수가를 인정하자는 얘기다.
Q: 의원간 회송수가를 인정해준다고 동네의원 질이 높아지나.
A: 생각해봐라. 내과에서 흉부외과로 환자를 전원받으려면 이들은 다시 흉부외과 본연의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규모가 안되면 공동개원을 해서라도 수술을 시작할 것이고…
지금의 의료현실을 냉정하게 말하면, 의사들 앞에 펼쳐진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월급쟁이(봉직의)가 되서 월급이 깎이거나, 근근이 동네의원을 운영하다가 망하는 것. 지금의 프레임에선 한계가 있다.
Q: 의원간 회송수가를 통해 동네의원이 활성화 됐다고 치자. 그런데 이 시스템이라면 중소병원은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
A: 그렇지 않다. 가령 흉부외과 환자라도 내과적 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있다. 그런 환자는 중소병원으로 전원 조치될 것이고, 이 환자만으로도 중소병원은 바쁠 것이다. 또 영세한 중소병원은 개방병원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3차 즉, 대학병원도 늘 강조해왔던 연구중심병원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Q: 지금 제안한 그림에서는 1차에서 내과 등 일부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역할을 하게되겠다.
A: 게이트키퍼가 아닌 네비게이터 역할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앞으로 누가 네비게이터 역할을 하게될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정도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그런데 지금의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개원가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진료하고 있는데 네비게이터 역할을 반길 것인가 의문이다.
A: 물론 내과 중에서도 각자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치료자로서의 의사보다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선 환자를 잡고 있어야 돈을 버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감별, 진단해서 적절한 의료기관에 신속하게 보내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돈을 버는 구조가 되도록 의뢰회송 모형을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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