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의료 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임상 현장에 확산되면서 의료계 일각에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초대회장은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의료가 효율성만 치중하는 공리주의적 잣대로 흘러가는 상황이 자칫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 AI가 효율성을 이유로 급속 확산하면서 윤리적 문제와 인간 생명 보호라는 의료의 본질을 간과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보건 의료 분야 AI 윤리 및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은 관련 기술이 효율성이나 비용 절감·상업적 이익만을 우선시할 때, 인간 존엄성과 안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AI 시스템이 의료 효율성을 높이는 데만 집중돼, 정작 환자의 생명 안전이나 의료진의 주체적인 판단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이명진 초대회장 역시 이처럼 의료를 공리주의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 AI는 진료 보조를 통한 업무 부담 감소,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 등 효용성을 바탕으로 의료 현장에 빠르게 안착하는 추세다. 다만 기술 발전으로 의료를 경제성과 효율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류가 덩달아 확산하고 있다는 의료계 우려가 나온다.
의학이 여기 잠식될 경우 환자 치료라는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AI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더라도, 효율성을 따지느라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하는 상황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
의료 AI의 보편화로 환자가 수치화된 지표로만 평가된다면 치료 과정이나 이후 발생하는 합병증·후유증 등을 지나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명진 초대회장은 "AI가 효용성으로 인간에게 많은 이익을 줄 수 있지만, 공리주의에 치우쳐 약자의 생명이나 건강을 훼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며 "가장 소중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에서 기술 도입이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의료 기술이 도입됐을 때 눈앞에 보이는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는 철저히 약자와 환자 입장에서 보수적으로 나가는 것이 생명 보호에 유익하다"며 "AI 발달에 따라 환자의 요구가 있더라도 그것을 모두 따르는 것이 의료 윤리에 합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의사들이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진 초대회장은 의료에서 공리주의적 생명 경시 풍조에 대응할 근본적인 법적 장치로 인간 생명 보호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법안은 인간 생명 보호의 기본 원칙을 법 체계 전반에 반영하기 위한 기본법 성격의 법안이다. 헌법상의 생명권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하위 법률들을 규범적으로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인간 생명의 중요성 및 보호의 필요성을 선언하고 국가 및 지자체 등의 책무, 생명 정책의 추진 체계 등을 총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특히 이명진 초대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인간생명보호법 제정을 위한 학술세미나'에도 발제자로 참여해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세미나는 과학과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법적·윤리적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초대회장은 발제를 통해 의료를 공리주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낙태와 의사 조력 자살 등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태아를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취급하거나, 보호 받아야 할 노약자를 사회적 짐으로 여겨 조력 자살을 유도하는 행위는 생명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자연사하는 순간까지 경제적 여건에 따라 가치가 변질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라는 설명이다.
또 그는 대한의사협회 역시 의사 윤리강령을 통해 태아의 생명 보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의사 조력 자살을 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부연이다.
회생 불가능한 환자가 질병의 경과에 순응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연명의료 중단과, 인위적인 조력 자살은 명확한 윤리적 경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극한의 고통을 호소할 때 의사가 해야 할 일은 생명 단축을 돕는 것이 아니라 통증 완화 등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제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사는 생명 단축의 도구가 아닌 수호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돕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 초대회장은 "의사의 참된 목적은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일이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나 조력자가 될 수 없다"며 "생명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효율이나 능력으로 가치 판단을 할 때 약자가 핍박 받는 무서운 세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국가가 환자를 신체적 자살로 내몰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도와야 한다"며 "의사의 직업적 명예와 윤리를 지키고 생명을 온전히 수호하기 위해 국회에서 속히 인간 생명 보호법을 제정해 주길 강력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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