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의사에게 진료와 수술은 단순한 기술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마주하며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작은 전쟁'에 가깝다. 환자의 상태는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동일한 질환이라도 개인의 생리적 반응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결국 최종 판단은 현장에 있는 의사의 경험과 직관, 그리고 책임에 의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료의 본질을 고려할 때, 최근 논의되는 '중대한 과실'과 '중한 과실'의 법적 구분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연속적이고 확률적인 판단의 결과물인데, 이를 사후적으로 이분화하여 책임의 정도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이 명확한 수치가 아닌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료행위조차도 상황과 판단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불명확성이 필수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의사는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기보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안전한 선택'을 우선하게 된다. 이는 곧 방어진료의 구조적 고착화로 이어진다. 고위험 환자나 예측이 어려운 상황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화되며, 결국 가장 도움이 절실한 환자일수록 적절한 치료 기회를 잃게 된다.
방어진료는 단순히 의료비 증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필수의료의 붕괴로 이어지는 신호다. 응급, 외상, 중증질환과 같이 본래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영역에서 의사의 참여가 줄어들고, 의료는 점점 '안전한 영역'으로만 이동하게 된다. 그 결과 의료 시스템 전체는 취약해지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이 가장 먼저 흔들리게 된다.
전쟁에서 동일한 행위가 '살인'이 되기도 하고 '사살'이 되기도 하듯, 의료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과실'이 되기도 하고 '불가항력'이 되기도 한다. 그 차이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석하고 규정하는 기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불명확하고 사후적으로 작동할수록, 현장의 판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에서의 과실 판단은 결과 중심의 단편적 평가를 넘어, 당시의 의료 환경과 의학적 합리성, 그리고 의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형사책임의 과도한 확대는 필수의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민사적 보상 체계와 위험 분산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중대한 과실'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성을 처벌하려는 순간, 의료는 위축되고 환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현장의 판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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