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 "고령화시대, 만성콩팥병을 현재 상태로 방치하면 투석비용만 5조, 더 나아가 6조원까지 육박할 수 있다."
이는 정부가 만성콩팥병 환자를 집중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신장내과 교수들의 경고다.
대한신장학회 박형천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만성콩팥병 관리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현재 투석환자 관리 과정에서의 살인적인 비용 증가를 지적했다.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국가가 여기에 투입해야 하는 건보재정이 늘어날 텐데 그 규모가 5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박 이사장의 전망이다.
박 이사장은 "5조원이라는 금액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 대학병원 10개를 지을 수 있을 정도"라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이 혈액투석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치하면 건보재정 파탄…1인당 진료비 다른 질환의 280배
재정 부담의 심각성은 수치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투석환자는 약 12만 명으로, 이들에게 소요되는 치료비용은 연간 2조6천억원에 달한다.
5년 전 1조7천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사이 1조원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5년 내 5~6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게 학회의 분석이다.
특히 만성콩팥병 환자의 1인당 진료비는 전체 질환 중 가장 높은 수준인데, 그 90% 이상이 투석 환자에게 집중된다. 초기 만성콩팥병 환자와 투석 환자의 치료비를 비교하면 무려 280배 차이가 난다.
조기에 발견해 관리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 투석 단계에서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의료비에 그치지 않는다. 혈액투석 환자는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4시간씩 병원을 찾아야 한다. 고령 환자일수록 혼자 내원이 어렵기 때문에 보호자 2~3명이 교대로 병원 동행에 매여야 하는 실정이다.
환자 1명이 생기면 그 가족의 경제활동 능력도 함께 잠식되는 셈으로, 사회 전체가 치르는 간접 비용까지 감안하면 재정 손실은 수치 이상으로 커진다.
박 이사장은 "지금처럼 가다가는 직장인들이 현재보다 건강보험료를 2배 더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전문가 집단으로서 30년 뒤를 내다봤을 때 지금 당장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이 명확하다"고 경고했다.
만성콩팥병으로 인한 사망 순위 역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과거 전체 사망 원인 19위에 머물렀던 이 질환은 2017년 기준 12위로 올라섰고, 2040년에는 5위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생존율 측면에서도 평균 암 사망률보다 불량한 수준으로, 대장암과 비슷한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학회에 따르면 당뇨병으로 인한 투석 환자 비율도 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전체 투석 환자 수와 발생률 증가 속도 또한 대만에 이어 세계 2위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환자 수가 2.3배 이상 늘었다.
조기 발견·신약 활용으로 투석 진행 7년 늦출 수 있어
박 이사장은 조기 관리만 제대로 이뤄져도 말기신부전으로의 진행을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당뇨병성 콩팥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다파글리플로진 등 SGLT-2 억제제 계열의 신약을 적극 활용할 경우 투석 진행 시점을 최대 7년까지 지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신약들이 잇따라 소개되면서 조기 발견과 적절한 약제 적용의 임상적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만은 20년 전부터 만성콩팥병 관리에 집중 투자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투석환자 증가세를 억제하는 성과를 거뒀다.
학회는 한국의 경우 대만이 20년에 걸쳐 달성한 수준에 5년이면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 지금이 선제적 대응의 골든타임이라고 경고했다.
만성콩팥병 관리법, 국가 주도 체계 구축 담아
박 이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지난 2월 발의한 만성콩팥병 관리법안의 주요 내용을 거듭 언급하며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차관을 의장으로 하는 만성콩팥병 관리위원회 설치, 5년 단위 종합관리계획 수립, 환자 등록·통계 시스템 구축, 투석 치료기관 인증제 도입, 경제적 취약 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 등을 골자로 담았다.
학회 측은 현재 투석기관 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성 평가에 등록된 기관 외에도 요양병원 등에 다수의 투석 장비가 운영되고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어,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1단계로 환자 등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존 데이터와 연계한 뒤, 인공신장실 인증제 시범사업을 거쳐 단계적으로 예방·관리 사업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로드맵도 제시했다.
박 이사장은 "만성콩팥병은 감염병이 아니지만 사실상 비감염성 팬데믹에 가까운 질환"이라며 "결핵처럼 국가가 앞장서 관리해야 건강보험 재정을 지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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