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조차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정의와 주요 질환군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단독 법률 제정이 전무합니다.
-보장성 제도에서 배제돼 있습니다.
-진료 연속성이 단절되고 있습니다.
-지원 근거가 미비합니다.
법으로 살펴본 심장질환은 한마디로 '소외'이자 '배제'라는 게 학회의 판단이다.
대한심장학회가 이례적으로 학술대회장 출입구마다 대형 배너를 세웠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심뇌법) 개정이 필요한 10가지 이유'.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학회가 공식적으로 내건 정책 요구문이자 청구서다.
17일 대한심장학회 학술대회장에서 작업을 기획한 정욱진 대한심장학회 정책이사(가천대길병원 심장내과)를 만났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심장질환은 여전히 법의 바깥에 있다"며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올해 초 정책이사로 선임된 뒤 가장 먼저 '심혈관질환의 법적 부재'를 마주했다.
문제의 발단은 중증 심부전 등 난치성 심장질환자들이 보장성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는 점. 만성 콩팥병의 경우 투석 직전 단계인 4기부터 산정특례가 적용돼 환자 본인 부담이 낮아지지만 심질환자는 사정이 다르다.
정 이사는 "중증 심장질환 환자가 보장성에서 제외돼 있어 진료실에서 약값에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많이 본다"며 "만성 콩팥병, 암은 산정특례를 받아서 환자가 치료 금액의 5~10%만 내도 되는 반면 심장질환자는 심장 이식 직전 상태에서도 약값의 60%를 내야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비싼 약들도 많이 써야 하는 환자들이 부담에 시달리다가 결국 심질환으로 돌아가시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혜택이 거의 없는 불합리함의 구조적인 원인에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크다"고 진단했다.
중증·난치성 심부전, 중증판막질환, 부정맥, 선천성 심질환, 폐고혈압와 같은 중증 환자들 중 보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소수에 한정된다. 일부만 한시적으로 30일간 약값 인하 혜택을 보지만 대다수는 60%의 약값을 자부담하는 실정으로 이는 제도적 차별에 가깝다는 게 그의 판단. 해결책을 찾아봤지만 현재 심질환자를 도와줄 '법적 근거'가 부재했다.
"정책연구소장, 보험이사, 정책위원 등과 한두 달 논의해봤더니 놀랍게도 관련 법이 없더라고요. 관계 부처 관계자들도 심혈관질환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관리법이 없으니 제도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핵심은 현행 법 체계의 빈칸이다. 법에는 '심장질환' 정의조차 명시돼 있지 않고, 주된 정책 영역은 급성기 뇌졸중과 심근경색에 집중돼 있다.
그는 "급성기만 관리하다 보니, 장기 관리가 필요한 심부전·부정맥·선천성 심질환 환자는 제도 밖으로 떠밀려있다"며 "게다가 심장질환은 건강증진기금에서도 0.6% 정도인 200억원만 지원될 정도로 법이 없으니 예산 편성의 근거도 없고, 따라서 지원도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학회 차원의 첫 정책 캠페인으로 '심뇌법 개정 10가지 이유' 배너를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법 개정의 취지에 의사도 환자도 공감해야만 추진 동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공론화에 시동을 걸은 셈.
정 이사는 "이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행동 선언"이라며 "의사들이 학회장에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읽고, 환자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모든 세션장 출입구에 배너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뿐 아니라 호텔 내원객들도 보게 해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도 있다"며 "산정특례의 기준이나 질환명이 법에 명시돼야 하고 중증 기준도 법에서 정의되는 쪽으로 법이 바뀌지 않으면 보장성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배너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겼다. "심장질환은 전 세계 사망원인 1위이자 국내 두 번째 주요 사망원인", "국내 보건의료 법령에는 '심장질환' 용어조차 없다", "심근경색·심부전·부정맥 등 고위험 질환은 보험 보장성 제도에서 배제돼 있다" 등, 그간 의료계 내부에서만 논의되던 현실이 직접적인 문장으로 제시됐다.
학회가 추진하는 개정 방향은 명확하다. ▲심장질환의 정의 및 주요 질환군 법적 명시 ▲급성기 중심의 권역센터에서 만성 관리 중심 체계로 전환 ▲심장혈관중환자실의 정부 지원체계 편입 ▲건강증진기금 내 심장질환 항목 신설 등이다.
정 이사는 "암·뇌혈관질환·치매·당뇨·자살예방 등은 이미 각각의 관리법과 기금 체계를 보유하고 있어 정책 및 연구비 지원이 풍부하다"며 "학회 입장은 다 보장해 달라는 게 아니라 중증 환자들만이라도 혜택을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심부전 환자는 150만명이 넘지만 중증 심부전은 2만명, 경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다 합쳐도 5만명에 그친다"며 "전체 심장질환을 산정특례로 포함해달라는 게 아니라,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환자들만이라도 혜택을 달라는 현실적 제안이고 이는 정책적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미국, 호주뿐 아니라 옆나라 일본도 법·기금·지방정부 책임이 명시된 구조적 제도를 갖고 있지만 한국만 법적 근거가 없어 정부 지원, 수가 개정, 연구비 및 기금 배분에서 모두 배제되고 있다"며 "심혈관질환의 법적 정의, 재정 기반, 중앙·지방 연계 구조를 명문화한 개정안을 통해 국민 건강권과 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는 법률 안에 예방·치료·재활까지 포괄하는 국가 전략과 기금 체계를 명시해 국가 책임을 제도화했지만 한국은 법적 근거가 없어 심장질환이 정책 테이블에 오르기 어려운 상황. 법 개정이 이뤄져야 정부 내 관련 TFT가 구성되고, 기금 배분 구조도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법' 그 자체에 있다는 설명이다.
정 이사는 "오는 11월 19일 국회 토론회에서 심뇌법 개정 관련 내용을 다룰 예정"이라며 "이를 계기로 심장질환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중증 환자에 대한 보장성 확대와 의료 인프라 확충을 포함한 구체적 개정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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