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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거짓말에 속아버린 대법원

발행날짜: 2023-02-20 05:00:00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강석하 전문위원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강석하 전문위원

대법원은 초음파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앞서 살펴본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르면, 한의사인 피고인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하여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이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여기서 대법관들이 한의사에게 속아넘어간 부분이 있다.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는 한의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사건의 2심 판결문에서는 한의사가 처음 조사 때에는 자궁 내막 두께를 측정했다고만 진술하고 한방 진단에 사용했다는 주장이 없었다가 한의학적 방법에 기초한 진료행위인지 여부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한의학적 진단이라고 말을 바꿨다며 위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고소한 환자가 한의사로부터 산부인과에서 보는 초음파와 동일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그리고 "환자 F는 피고인이 초음파 검사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과 피고인이 피력한 산부인과 의사에 의한 서양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신뢰함으로써, 자궁내막암의 발견 및 치료가 늦어지게 되었다"고 환자의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 한의사가 당시부터 장기간 근무했던 K한의원의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도 현대의학적 치료를 설명하는척하면서 비난하고서는 자기들 치료가 안전하고 근본적인 치료라고 홍보하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K한의원의 한의사들이 현대의학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 단점을 뛰어넘는 치료를 제공한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게 적혀있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한의사를 고소한 환자는 한의사의 말과 초음파 진단을 믿고서 산부인과의사의 진료를 기피하게 되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자궁내막증식증을 진단받은 뒤에 K한의원에 갔다고 한다. 자궁내막증식증을 진단한 의사로부터 이 질환은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만일 한의사가 대법관들의 믿음대로 "나는 산부인과의사가 보는 방식으로 초음파를 보는 것이 아니고 한방 관점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자궁내막증식증이 호전되는지 암으로 진행되는지는 내 영역이 아니므로 산부인과의사에게 정기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면 환자는 자궁내막암 2기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암을 발견하고 억울해서 의료법 위반으로 신고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K한의원에서 초음파 관련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홈페이지에는 수십 건의 치료사례를 초음파 영상과 함께 홍보하고 있다. 이 모든 자료에 자궁초음파에 대한 한의학적 해석은 전혀 없다.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은 한의사가 조사받고 재판받을 때만 등장한 것이다.

한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질병진단코드가 별도로 있었다. 2010년부터 의사들이 사용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고, KCD와 통합이 불가능한 일부 한의학적 진단코드만 남겨서 KCD에 덧붙였다. 그 이후로 한의사들은 "우리도 의사와 같은 KCD를 사용하니까 KCD 진단에 필요한 의료기기와 검사를 허용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한의사들이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해서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주장은 고발당했을 때만 나오는 변명에 불과하며, 한의사들의 기존 주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의 의도는 항상 의사들이 하는 진단 자기들도 똑같이 하겠다는 목적임이 분명하다.

한의사들이 늘 주장하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 한의원에서 엑스레이와 혈액검사가 필요하다"는 말만 봐도 의사가 하는 일을 자기들 똑같이 하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한의사들이 한의학적으로만 활용한다면 환자가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할 필요성에는 영향이 없으니 환자의 편의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대법원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한의사들에게 초음파 등 의료기기 사용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그 바탕이 처벌을 모면하기 위한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이라는 거짓말에 기초한 바람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게 됐다.

대법원의 새로운 기준도 엄격하게 따지면 의사들이 하는 역할을 자기들도 똑같이 하겠다는 한의사들의 본래 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한의사들이 욕심대로 사용한다면 대법원 판결 취지를 벗어났다고 고발 당해서 법원으로 또 가게 될 것이다.

기존에는 한의사들이 초음파가 없어서 진단할 수 없었던 질환을 초음파로 진단해주면 합법인지 불법인지 모호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한의사들의 영역이 아니었던 의과만의 진단이니 무면허의료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어서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한방이론을 적당히 갖다 붙이면서 "검사 결과에 따라 한약재 구성과 혈자리가 달라지니 한의학적 보조수단이다"라고 주장하면 판사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한의사가 정확한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의학으로 자궁내막증식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제대로 된 근거가 없음에도 초음파로 환자를 현혹하며 붙잡아둔 한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게 아니라 해쳤다.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생활한 사람들은 의학논문을 읽는 직업은 갖지 않는 이상 한방치료가 환자에게 위약효과 이상의 도움을 준다는 신뢰할만한 근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법관들이 2심 판사들만큼만 사려 깊었더라면 한의사로부터 피해를 당할 환자들을 양산하고 혼란을 증폭시키는 판결을 내놓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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