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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1년 지났지만 아직도 잠들면 그날 꿈"

발행날짜: 2015-04-16 05:27:08

사고 직후 팽목항 가장 먼저 도착했던 의사, 공보의 김진혁 씨

바다에서 막 인양한 시신이 하얀색 천에 덮여있다. 이미 숨이 멎은지 오래. 하지만 의사는 이를 꽉 물고 확인을 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서 김진혁 씨(29)가 확인한 시신은 3구. 시신을 대하는 것도 의사의 일 중 하나지만 그날의 기억은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로 남았나 보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김진혁 씨
2014년 4월 16일, 온 나라를 슬픔에 빠뜨렸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김진혁 씨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3년차 공보의였다.

김 씨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의사였다. 그리고 의료인력이 충분하게 투입되기 전까지 두 달여를 팽목항에 머물렀다.

"처음 공보의들 현장 소집령이 떨어졌을 때만 해도 상황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원 구조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현장에서도 100명의 구조자를 태운 배가 목포한국병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불 덮어주고 체온만 유지시켜 주면 되겠지라는 안도의 웃음을 갖고 팽목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구조자를 태우고 목포한국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배는 애초부터 없었다. 승객 300여명은 거의 가라앉아 선미만 보이는 배 안에 남아 있었다. 공기주머니, 아직 살아있다는 문자메시지 등 희망은 모두 거짓이었다.

현장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조금의 실소도 용납되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가 시작됐다.

동거차도 섬에 들어가는 길
그는 현장에 도착해 있던 공보의 동료와 응급키트를 들고 팽목항에서 한 시간 반 가량 배를 타고 동거차도로 들어갔다. 90여 명을 태운 작은 배가 그 섬에 있었기 때문이다. 타박상 등 경상 환자를 치료한 후 김 씨는 멍하니 바다만 바라봤다.

체온을 따뜻하게 해줄 이불도 있고, 가벼운 경상 정도는 치료할 수 있는 응급장비도 있는데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이들은 오지 않았다.

"팽목항에 머무르는 동안 과거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모두가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뭍에서는 준비가 다 돼 있는데, 물에서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 뿐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현장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사고 처음 일주일이 그는 어느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의사 인력이 모자라 진도에서 근무하던 공보의 3명이 16시간씩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야 했다.

팽목항 진료소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고, 사고 때문에 환자가 발생하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다.

특히 사고 당일 밤은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에 나선 경찰, 소방관, 진도군 관계자를 상대로 극에 달한 분노를 언제 표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부상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사고 첫날만 해도 실종자 가족들에겐 우리 애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구조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왔죠. 하지만 그 누구도 배 안에 있는 300명이 모두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무거움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했습니다."

동거차도 섬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구조자들이 팽목항으로 이송하는 배 타기 전.
사고 다음날 새벽, 그에게 또 다른 두려움이 닥쳤다. 사고현장을 직접 가보겠다는 유가족을 따라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을 둘러본 후 팽목항으로 다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학부모 한 명이 아들 시신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충격을 받은 학부모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다급하게 의사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호흡, 맥박을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긴 했지만 실제는 처음이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맥박을 먼저 체크했습니다. 다행히 맥박이 뛰고 있어서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 폐쇄를 막기 위해 입에 천뭉치를 물리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팔다리를 주무르는 응급처치만 했습니다."

이 응급대처로 김진혁 씨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갑갑하다고 호소했다. 생명의 무게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는 잘했다고 상까지 줬는데 한 사람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을 체감하고 나니까 책임감이 너무 커졌습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가 300명입니다. 3년 동안 공보의 생활을 하면서 연을 맺은 사람이 그 숫자가 안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큰 숫자더라고요."

그는 앞으로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까.

"돈 주고 살 수 있는 경험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의사로서 역할을 조금이라도 했다는 점엔 보람을 느끼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15일 3년의 공보의 복무 기간을 마치고 소집해제했다. 다음 주부터는 원주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시작한다.

"팽목항에 있는 동안 한 명이라도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기대로 너무 애가 탔습니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그랬습니다. 내가 손을 써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이면 반드시 살리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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