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지난 24일 3학년 등교에 이어 28일 1학년과 수학여행을 떠나지 않은 2학년까지 등교하면서 임시휴교 13일 만에 수업을 재개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단원고의 수업 재개는 학생이나 학부모, 교육청이 아닌 재난 심리 전문가들의 설득으로 이뤄졌다.
학교에 다시 나오는 것이 추가적인 희생을 막고, 학생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교대로 단원고에서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박은진 홍보위원(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교수)을 만나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치료의 필요성 및 지원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현재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상태는 어떠한가.
A. 구조된 2학년 학생들과 1, 3학년 학생들로 구분해 생각해봐야 한다.
생존한 2학년 학생들은 워낙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돼 심리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친구들과 선생님도 잃었다. 이들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나머지 1, 3학년 학생들 역시 선배 또는 후배인 2학년들과 추억이 많다. 때문에 실종 또는 사망 상태인 학생과 선생님에 대해 그리움,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된 상황과 어른들 및 사회 등에 대한 분노도 큰 상태이다.
Q. 그런 학생들에게 심리치료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A. 현재 등교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사망 또는 실종된 2학년 학생들이 잊혀지거나 기억에 묻혀버리게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너무나 슬퍼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학년 학생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그들을 기억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상담과 필요한 경우 그룹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심리적 상처를 잘 치유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Q. 일각에서는 마음을 더 추스를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등교 시점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A. 보통 학생들과 관련된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학교가 문을 닫고 가정과 사회 등에서 각각 사태를 수습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학생들의 경우 학교 밖에 방치할 경우 심리적 치료나 감정의 해소가 더 어렵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다. 등교하라는 것이 꼭 공부하거나 수업을 받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원고 학생들에게 등교란 가장 안정적인 공간에서 함께 모여 친구, 선생님들과 함께 정상으로 돌아오는 치유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수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사망하거나 실종된 2학년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학교에 대기하다 만난 학생들은 2학년 학생들에 대한 여러 기억과 그리움, 괴로움들을 표현한다. 이들에게 학교 밖의 상담소를 찾아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과 심리치료상담사들이 학교 안에서 대기하다가 그 아이들이 힘들 때 들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전문가도 있고 대부분 의사는 대기하고 있다가 학생 개별 상담을 주로 하고 있다.
▲"세월호 피해, 단원고에만 초점…성인 피해자도 신경써야"
Q. 세월호 침몰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그러나 단원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A. 그렇다. 포커스가 너무 학생들에 맞춰져 있는 부분도 있다. 세월호 침몰에 인한 성인 사망자나 실종자도 많다. 그런데 언론과 사회가 학교와 학생이 회복하는 과정에만 관심이 많아 성인 실종자 및 사망자의 가족들이 더 소외되는 듯한 느낌이다.
Q. 사망이 확인돼 장례를 치른 학생 가족들의 심리도 신경 써야 하지 않나.
A. 사실 장례와 발인이 끝난 사망 학생의 가족들에게는 지금이 더 힘든 시기일 수 있다.
사망한 학생의 부모의 경우 다른 학생들이 등교하는 것을 보면 자식 생각에 매우 괴로울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잘 자라서 자신 아이의 역할까지 해주기를 바라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왜 우리 아이만 죽었느냐는 원망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 대해 더 관심을 두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Q. 실종 학생의 가족들은 아직 진도에서 기다림을 계속 중이다. 이들에 대한 걱정도 크다.
A. 사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자와 가족의 심리적 상태에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구조는 진행돼야 하지만,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현실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진도에 내려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그곳의 가족들은 너무 큰 고통에 심리상담을 받을 준비가 안 된 상태이다.
구조가 안 되고 사망이 확정이 안 됐는데 어떻게 심리상담을 받느냐며 사치로 여기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Q. 그렇다면 실종자 가족들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인가.
A. 심리적인 상처를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인 신체의 안정이 필요하다.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탈진으로 거의 실신한 상태이며 그분들에 대한 심리상담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현실적이고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현재 진도체육관에서 돗자리와 이불을 깔고 숙식을 하고 있다. 건강한 이들에게도 힘든 환경이다.
이들이 실종자를 기다리면서 쉴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적절한 심리상담과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Q. 정부의 재난사고 대응 시스템이 중증 외상환자들의 응급의료와 이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A.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이미 여러 준비가 돼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재난심리와 관련한 전문가들도 있고, 각 학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복지부 산하 국립병원에도 재난 외상심리와 관련된 시스템이 마련돼 있으며 교육부에서도 지난해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를 만들어 지원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Q. 중요한 것은 심리치료 시스템이 적시 적소에서 실효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본다.
A. 재난과 관련한 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여러 상황을 경험한 현장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론만 있고 현장 경험이 없는 이들의 상담은 영혼 없이 허공에 날리는 말일 뿐이다. 현장 경험이 많고 이론이 뒷받침된 전문가가 진두지휘하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백업을 해야 한다.
Q. 국민의 슬픔도 크다. 일각에서는 사회적인 집단우울증을 우려하기도 한다.
A. 많은 국민이 커다란 슬픔에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리적·정신적 상처에 관심을 두고 도와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슬픔만 너무 강조해 집단우울증으로 과잉해석 안 된다.
애도를 병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건강하게 정서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원고 심리치료 지원 의사 개원의가 더 많아"
Q.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심리치료에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여하는 회원 수는 얼마나 되나.
A. 단원고 심리치료 지원과 관련해 많은 회원의 참여에 깜짝 놀랐다.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의 지원 요청에 초기에만 150여명 정도의 회원이 참여했다. 지금은 200명을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이 학술대회 등을 제외하곤 없었다.
힘든 점도 있지만 서로 뭉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가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Q. 단원고 심리치료 지원에 나선 회원들은 대부분 대학교수인가.
A. 대학병원에 계신 분들보다 개원의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병원에 계신 분들은 외래를 조정해서 나오지만, 개원의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쉴 때를 이용해 나오거나 생계를 접고 나오기도 한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나 인근 서울 뿐 아니라 대구나 공주 등 전국에서 일정을 조정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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