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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싶은 찰나의 기억들

배고은
발행날짜: 2014-08-14 11:02:46

경희대 의전원 3학년 배고은 씨

정말 가끔이다. 일 년에 두 번은 될까? 갑작스레 울컥할 때가 있다. 열 받아서 울컥 눈물이 맺히는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훅하고 나를 덮칠 때, 숨 쉴 수조차 없는 강렬한 찰나 말이다.

그 순간 농후한 감정이 정갈하게 다가와 그 안에서 내가 오직 방관자로서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때가 정말 가끔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잔디에 누워 쉬고 있는데, 이어폰이 빠져 눈을 떠보니 눈앞에 구름밖에 없을 때. 미세하게 움직이는 구름이 마치 생명체 같아 오롯이 우리 둘만 교감하는 그럴 때.

좋아하지도 않았던 장르의 음악 한 곡이 콕 하고 마음에 들어 내리 듣던 시절, 무심코 돌리던 텔레비전에서 그 곡을 만났을 때. 심지어 잘 보지 않는 교양 채널이라 채널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우연의 순간에.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빌린 영화가 알고 보니 만화영화라 엄청 실망하고 돈이 아까워서 겨우 봤는데 꽤 긴 여운을 주었을 때. 그리고 또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 같은 영화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는 나를 깨달았을 때.

망망한데 가끔은 너무 예쁜 장면에 놀라는 영화를 보면서 흠뻑 빠져있는데,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싸구려 영화관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이 영화를 혼자 소유한 기분이 든 그 찰나.

컴퓨터 작업을 거치지 않아서 큼지막하니 투박한, 초점조차 맞지 않아 흐릿한 나를 찍은 필름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 원본을 선물 받았을 때, 그리고 사진 안에선 웃는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을 때.

늘 하던 것처럼 별 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기막힌 미문(美聞)을 모아둔 곳을 발견한 순간. 인터넷이 마냥 쓰레기는 아니라고, 이럴 수도 있구나, 처음 생각이 들었던 순간.

마지막 공연, 마지막 곡, 마지막 음이 스피커 안에서 끝나고, 차마 어둠으로 사라질 관중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눈을 감고 불 끄는 스위치 소리를 기다리던 그 순간에.

정신없이 행복하게 친구들과 졸업 사진을 찍고 나서 졸업식 가운을 반납하고, 그동안 쓰던 학교 계좌를 닫으면서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동안의 나를 비로소 마감할 때. 마지막으로 계좌에 들어온 가운 대여 반환료를 두 손으로 받아들며 이 돈은 한동안 쓰지 않고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때.

오랜 친구에게 공유하지 못한 나의 일부분을 조심스레 보여주며 멀어질 것을 염두에 두며 눈치를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내 사람, 내 편으로 언제나와 같이 당연하게 남아있었을 때.

멀리 떠나있던 친구가 돌아오면서 대수롭지 않게 아무 말 없이 건낸 봉투 안에서 길고 짧은, 냅킨에, 공책 한 장에, 슴슴한 하루가 기록된 편지 뭉치를 발견한 순간. 그동안의 생활을 기꺼이 나에게 공유해 주었던 순간에.

이럴 때들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이겠지만 누구나 때로는 유독 자신을 깊게 느낄 찰나의 순간이 있다. 너무 소소해서 남들은 지나치지만 나에겐 특별했던 그 찰나의 순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존재를 꽤 밀도 있게 느끼곤 한다. 어쩌면 이런 찰나의 기억을 차곡차곡 모아두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는 바쁜 탓에 나를 마주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방학이 되어서 숨 좀 돌리니까 뜻하지 않게 다가오는 나와의 조우 시간을 설레게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나를 만나려 살아간다. 당신에게도 간직하고 싶은 찰나의 기억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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