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휴가를 다녀와서 인사치레로 "거기어때"를 묻는다.
"어디 안가고 집에 있었어요" 그러면 "왜요?"가 나온다.
은연중에 휴가와 여행을 동일시하고 있다.
물이 끓으면 뜨거운 수증기를 주전자 한켠에 만들어진 조그만 구멍을 통해 피식하고 내보낸다.
휴가는 끓는 물이 주전자를 뚜껑을 밀고 넘치지 않게 만든 주전자의 '피식구멍'이다.
휴가는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나를 강제로 스톱(STOP)시킨다.
일단정지하고 주변을 돌아보라고 만든 제도다.
휴가에는 보상, 휴식도 있고 점검도 있고 재충전도 있다.
오래동안 봉급쟁이 생활을 하니 휴가기간동안 이것도 저것도 해봤다.
'방콕'도 해봤고, 하계CEO포럼도 다녀봤고, 멀리 유럽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보상, 휴식, 재충전, 점검을 다 만족시키는 휴가방법은 흔치 않다.
방콕을 하고나면 멀리다녀온 사람들의 '무용담'이 부럽다.
그래서 남들처럼 멀리 유럽여행을 다녀오니 여독이 쌓여 재충전, 휴식은 되지 않았다.
집사람이 무릎을 다친후로는 그 여행마져 힘들어 졌다.
몇년전 선배분이 '쿠르즈'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일본,대만코스를 다녀왔다.
매일 짐싸는 일이 없고 걷는 것도 자기 마음이니 집사람도 좋아했다.
나의 경우, 쿠르즈를 타면 보상, 휴식, 재충전, 점검이 저절로 됐다.
왜 '저절로' 일까?
일단 쿠르즈내가 비행기내와 같으니 통신이 두절되어 핸폰이나 노트북을 쓸 수 없다.
물론 돈을 내면 통신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더이상 휴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휴가는 '일상과의 단절'이다.
요즘세상은 통신만 두절되도 휴식이 보장된다.
한번 핸폰과 노트북이 없는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상상을 해보면 단박에 답이 나온다.
그렇게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눈이 "상대방"과 "밖"으로 쏠린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태평양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지루하기보다 단조롭다고 느낄때가 되면 낯선 항구에 배가 닿는다.
얼른 내려 일단 핸폰을 접속하고 세상의 끈을 이은다.
항구에서 박물관 미술관, 전망대 등 이국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다시 배에 오르면 자동으로 세상과 두절된다.
쿠르즈를 타면 우선 배의 맨앞(선두)으로 가본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 가는 방향에 먹구름은 없나?
그리고 뭐라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부족한 싱그러운 바다바람이 온몸을 감는다.
"열심히 일한 사람 떠나라"란 광고처럼 "지금 보상받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러면서 내가 가고있는 방향을 맞는가?
진짜 진북향(true north)이 맞나?하는 생각이 든다.
배의 맨뒤(선미)도 가본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스크류가 만드는 물보라가 끝없이 보인다.
잘 살았나?, 분에 넘치게 사는 것 아닌가?란 질문을 내게 보내는 것 같다
반성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그것을 일깨워주는 장소다.
선중간은 길다.
배가 워낙커서 보통 5만톤급 함공모함의 2.5배 크다.
(보통 20층짜리 아파트 3,4개를 붙여지은 건물크기정도)
톤수에 따라 다르지만 특정층을 한바퀴를 도는데 약 1키로미터다.
걷다가 긴벤치에 기대어 앉아서 책을 보다가 잠도 잔다.
다른배도 지나가고 낯선 섬도 지나친다.
배도 섬도 안보이면 멍을 때리게 된다.
학자들이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멍 때려야 된다고 하는 것'이 저절로 된다.
보상, 휴식, 재충전, 점검을 할 수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탑승객 전체가 외국인이어서 오롯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피식 구멍"으로서의 휴가제안을 해본다.
회사일도 쿠르즈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의자를 갖고 배의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 지 중간 중간 깨달을 수있는 지표(계기판)는 있는지?
목표한대로 잘 갈 수 있게 제대로된 계획은 있는지?
파도나 태풍으로 방향을 잃게되면 프랜B는 있는지?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일 것이다.
거의 모든 시간을 쿠르즈선박의 중간에서 보내듯이 우리네 회사 일도 같다.
지금 자기일 하는데 급급하다.
일감바구니에 일이 비워지는 날이 없다.
심지어는 옆에 지나가는 경쟁상대도 못보고 일을한다.
물론 자기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선두나 선미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경쟁상대들(옆에 지나는 선박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완벽하게 일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의자를 갖고 배의 후미에 앉아 보자.
일이 끝나면 어떤 행태로 남게될까?
일이 원래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나?
경비는 제대로 쓰면서 일을 완수한 것인가?
더 나아 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일 것이다.
휴가는 일상과의 단절이다.
요즈음 휴가는 통신과의 단절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거기 어때"하며 비교하는 것보다 낫다.
배에 탔다고 치고 통신을 두절하고 상상을 해본다.
나는 지금 배의 어디에 서 있나?
선두인가? 중간인가? 선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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