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의 침습성을 전제로 한다. 인체는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의료행위 중 과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과실로 인하여 악결과가 발생하면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분쟁이 생긴다.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져 환자는 의사를 상대로 의료과오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게 된다. 이 때, 환자는 의사에게 통상 민법 제750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묻는다.
위와 같이 의료상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통상의 소송과 마찬가지로 환자 측에서 손해가 발생하는 것 외에 의사의 주의의무위반, 그 주의의무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주장·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전문분야로 의사 측에 정보가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의료행위에 있어 과실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고 현대 의학지식 자체의 불완정성 등 때문에 진료상 과실과 환자 측에게 발생한 손해(기존에 없던 건강상 결함 또는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통상적으로 회복가능한 질병 등에서 회복하지 못하게 된 경우 등)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자 측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에서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대법원은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환자측에서 의료과오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 환자측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법리를 형성했다. 즉, 대법원은 '환자 측이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한편, 대법원은 '여기서 손해 발생의 개연성은 자연과학적,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으나, 해당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해당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킬 막연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에는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즉,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여 추정의 한계를 설정하였다(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4다204665 판결).
다만,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행위를 한 측에서는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고 하여 의사 측에서 그 추정을 번복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대법원이 설시한 법리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를 본다. A는 수술 당시 혈압이 급격히 저하되었다가 의료진의 처치로 회복되었다가 다시 저하되는 등 저혈압 증상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활력징후가 급격히 하강하면서 활력징후 감시장치 경보음이 울렸고, 경보음을 들은 간호사가 4차례에 걸쳐 마취 후 수술장을 떠난 마취과 전문의 B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B는 전화로 간호사에게 지시하기는 하였으나 수술실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B는 최초 통화 후 40여분이 지난 후에야 수술실로 돌아와 A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치하였으나, A는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마취 중 망인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하여 응급상황에서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제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과실'을 인정하고, '만약 소외 1이 간호사 호출에 대응하여 신속히 혈압회복 등을 위한 조치를 하였더라면 저혈압 등에서 회복하였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하여 위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두 번째 사례를 본다. C는 D병원에서 좌측 제5요추-제1천추 미세현미경하 요추 추궁절제술 및 추간판제거술(이하 ‘이 사건 수술’이라 한다)을 시행받고 퇴원하였다. 그런데, 퇴원 후 10일이 지나 고열 등으로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수술부위 감염이 의심되어 혈액배양검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엔테로박터 에어로게네스(enterobacter aerogenes)균이 확인되었다. C는 척추내 경막상 농양으로 진단받았다. 이에 C는 D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① 수술 후 급성감염은 1-2주 사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수술 후 퇴원 시까지 별다른 감염소견을 보이지 않았던 점, ② 염증의 원인균으로 확인된 엔테로박터 에어로게네스균은 장내세균으로 면역성이 감소해 있는 환자에게서 기회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C의 다른 신체 부위에 있던 원인균이 혈류를 통해 이 사건 수술부위의 감염을 일으켰을 가능성을 쉽게 배제하기는 어려운 점, ③ 병원감염은 그 발생 원인이 다양하고 이를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현대 의학기술상 불가능하므로, C의 감염증 발생이 이 사건 수술 중의 직접 감염에 의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 자체만을 들어 곧바로 감염관리에 관한 진료상의 과실을 추정할 수 없다는 점, ④ 원인균이 병원감염을 시사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C의 감염증이 감염예방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진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는 사정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진료상 과실을 추정하거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없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위 두 사례에서 보듯이 구체적 사안에 따라 대법원은 의료과오 소송에서 입증책임에 관한 법리를 통해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추를 찾으며 형성된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된 판례의 법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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