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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시작하는 카데바 실습

박성우
발행날짜: 2019-02-07 09:51:23

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32]

여름 카데바

성형외과에 대한 첫 인상은 카데바 실습 때 만들어진다.

카데바는 해부 실습을 의미한다. 시체나 사체란 표현은 아직까지 거부감이 있어 시신 기증 혹은 시신 해부라고 일컫는다. 정서상 용어가 주는 께름칙함을 털어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카데바 실습이라 부르는 것이 해부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의과대학 시절에도 '의사가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 유일한 수업이 해부학 수업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되어 마주하는 카데바 실습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모든 의대생이 한 번은 거치는 이 실습은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실습의 대상이 된다. 피부, 근육, 혈관, 신경 뿐 아니라 심장, 폐, 소장, 대장, 콩팥 등을 모두 해부한다. 기간도 서너 달이 걸릴 뿐더러 술기도 부족하여 오래 걸린다.

수술장에서 쓰는 메스는 매우 날카롭다. 스윽 하고 피부를 한 번만 지나가도 두부가 잘리듯 피부가 갈라진다. 그래서 학생 때는 수술용 메스를 쓰지 못하고 실습용 메스를 갈아서 썼다. 다칠 위험도 있고 너무 날카로우면 관찰해야 할 해부학적 구조를 절단해버리는 상황이 생겨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술용 메스는 환자 한 명에게 쓰이기 때문에 일회용이지만 실습용 메스는 1회용이 아니다. 그래서 포르말린에 부패 방지 처리가 된 단단한 카데바로 실습하다 보면 칼날이 무뎌져 숫돌에 갈아 썼던 추억도 있다.

카데바 실습 장면. 매년 여름 레지던트 각 연차로 구성된 조별로 두경부, 몸통, 상지, 하지 네 부분으로 나누어 수술 해부실습을 했다.
전공의의 카데바

성형외과 전공의로서 카데바를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전공에 기초한 항목들로 실습이 이루어졌다. 동일하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실습이 이루어지지만 피부와 근육에 보다 집중된다.

예를 들어, 심장, 폐, 간 등 내부 장기는 성형외과의 영역으로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장기 이식의 미세혈관 문합술 역시 성형외과 의사가 다루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주로 근육과 피부, 그리고 얼굴 전체가 주요 대상이다.

피판술이 주요 무기인 종합병원 성형외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해부학적 구조를 찾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술기를 미리 연습하는 중요한 훈련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여러 의료센터에서는 성형외과나 신경외과, 정형외과 서젼을 위한 카데바 심화 실습 세미나도 매해 개최된다.

대표적인 세미나로는 안면이식을 하기 위한 술기를 연습하는 세미나가 있다. 그만큼 고난도의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한 만큼 카데바를 대상으로 미리 연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떼어내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어려울까.

이제는 수술을 전공하는 서젼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메스를 쓸 수 있다. 도구가 날카롭고 섬세할수록 카데바 실습은 매우 편하다. 근무가 끝난 후의 실습이라 고통스러웠는데, 도구마저 잘 들지 않았더라면 더 지옥을 경험할 뻔했다.

종합병원, 특히 대형병원에서 짬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모든 전공의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응급실 당직은 병원에 상주해야 하기에 언제나 한 명씩 결원은 생긴다. 그래서 카데바 실습은 평일 저녁 9시는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카데바 실습을 매주 항목마다 마치고 발표하는 시간은 토요일밖에 없다. 토요일 오전에 그 주의 해당 카데바 실습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나간다.

건물 지하 2층에 있는 카데바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 해부 실습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밤에 카데바실을 지나갈 때면 처음에는 서늘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반복은 사람의 감각을 무뎌지게 하지 않던가. 나중에는 홀로 새벽 4시까지 카데바와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진다. 표현하기 힘든 포르말린 냄새가 몸에 배기 시작하고 실습이 끝나면 온몸을 구석구석 문지르며 그 냄새가 빠지길 바랐다.

해부 자체는 학생 때 마친 것이라 어렵지 않다. 단,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구조를 관찰하고 해부하는 게 혼자하기에는 힘이 든다.

저연차 때는 홀로 실습하는 것이 서러워 4년차가 되면 절대 후배들을 홀로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들이 퇴근하면서 "오늘 안으로 여기 적혀있는 구조들 다 찾아놓고 표시해놔"하고 가버리면 막막했다. 간혹 도와주는 선배가 있으면 너무 고마웠다.

4년차가 되어서는 내가 퇴근하지 않으면 후임들이 아무도 못 가니 밤 12시까지 모두 함께했다.

카데바라 해도 한때 살아있던 이의 얼굴이다. 그래서 다른 팔 다리나 몸통을 해부하는 것에 비해 느낌이 좋지는 않다. 특히 성형외과처럼 쌍꺼풀이나 코 등 주요 수술 대상이 얼굴에 있는 경우 카데바의 눈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감수하고 쌍커풀에 붙어 있는 여러 근육들을 박리하고 어디까지 안전하고 어디부터 조심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책과 사진에서 보고 외워도 3차원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실제로 만져봐야 가능하다. 그리고 수술 어시스트를 할 때와 달리 자신이 직접 박리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모든 수술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집도의의 위치이다. 집도의의 위치에서 카데바를 통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수술을 미리 연습한다.

그것이 성형외과 전공의가 되어 하는 카데바 실습이고 학생 때와 다른 점이다. 덕분에 일반적인 해부학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구조들까지 다룬다. 과연 이런 것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일까란 의구심이 들지만 전문가를 구분 짓는 경계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수술의 모든 기초는 해부학으로부터 세워진다. 의학의 기초가 해부학에서 유래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약초를 써서 치료하는 주술적인 단계의 의학과 현대 의학을 구분 짓는 경계가 해부학이기 때문이다.

해부학을 정통하지 않고는 수술 또한 겉핥기에 불과하다. 술기 자체는 반복적으로 습득하면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지만 깊은 이해와 사고,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전문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전공을 정하고 10년 20년이 지난 종합병원 교수님들도 카데바 실습 을 통해 기초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쌍커풀 수술이지만 수술을 안전하고 빠르게 할 수 있기까지 많은 훈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100미터 육상 선수가 10초 이하의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할까. 마찬가지로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름마다 시작하는 카데바 실습. 카데바실의 포르말린 냄새처럼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없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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