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 최종 회의에서 권고안 채택이 무산된 후 협의체에 참여했던 일부 위원이나 단체 등에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어떤 인사들은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논의해왔던 것이 수포로 돌아간데 대한 서운함일 수도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의사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는 알다시피 2015년 전국적인 메르스 감염 사태로 인해 그 필요성이 대두되어 시작하였다. 또 나날이 위축되어 가는 일차의료를 살리자는 취지도 가미되었다. 그러면 지난 2년 간 협의체에서 논의된 것과 그 결과물인 권고안은 이러한 두 가지를 충족하고 있는가.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첫 번째 목적을 살펴보자. 메르스 사태 당시 부실한 의료전달체계가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것은 환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중증 외상 등 응급환자의 진료를 위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려들면서 감염을 확산시킨다는 것이었다. 즉 환자가 일차의료를 거치지 않고 대형병원을 드나드는 이른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집단감염을 악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번 권고안에는 여기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집단감염 발생 시 일차의료기관에서 걸러지고 지역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환자들이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고 수도권 등의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것을 막을 아무런 장치가 없다. 감염환자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진료가 가능한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의료비용이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사회보험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두 번째 목적을 보자. 지난 2004년 약 36%를 차지하던 의원급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 점유율이 해마다 급감하여 2016년에는 기어이 20% 미만으로 추락했다. 반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점유율은 계속 오르고 있는데,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거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원가의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수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직후 의약품의 조제권을 박탈당한 보상으로 약간 인상되었던 의료수가가 2002년 재정안정화대책이라는 미명 하에 도로 인하되었고, 특히 진찰료의 경우 다시 회복되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일차의료기관의 주 수입원인 진찰료가 15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으니 당연히 경영이 어렵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이번 권고안은 이 두 가지 핵심적인 이유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능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이라는 애매한 말로 비켜가고 있다.
우리 의료의 경우 전체 의사들의 80% 이상 차지하는 전문의들로 인해 국민들이 일차의료기관에서 바로 전문적인 진료, 즉 전문적인 수술이나 입원 등 이차의료까지도 제공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일·이차의료기관의 역할 분담은 무의미하며, 정말 필요한 것은 일·이차와 삼차의료기관 사이의 전달체계다. 그런데 이번 권고안은 거꾸로 일·이차를 '기능중심'이라는 이름으로 세분화하고 규제를 만들었으나, 정작 삼차의료기관으로 가는 전달체계는 만들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쟁점이 되었던 의원급 의료기관의 입원실 존폐여부는 무의미한 갈등만 제공한 것이 되었다. 현재 일·이차의료기관들이 서로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그 역사가 오래되어 이제 와서 갑자기 분리시키기 어려운데도 협의체 권고안에서는 굳이 이를 '기능중심'으로 분리하겠다는 무리수를 두었다.
결국 바람직한 전달체계는 일·이차에서 삼차의료기관으로 가는 전달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삼차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를 차츰 줄여나가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별다른 방법은 없다.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삼차의료기관에서 '경증 환자' 외래 진료 시 수가를 깎거나 환자 부담을 높이겠다는 건 이미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방식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전제
여기서 국민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일·이차에서 삼차의료기관으로 가는 전달체계를 강화하려면 필연적으로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해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제도가 정비되면 의료의 합리적 이용을 통해 바람직한 의료 소비문화가 정착되겠지만, 그럼에도 당분간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둘째, 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료수가 역시 원가 이상으로 보상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원가의 70%에 못 미치는 수가를 메우기 위해 박리다매로 진료하고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선 일차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국민들이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면,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의료계 내에서도 일차의료의 정의를 혼동하고 있다. 일차의료는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의료다. 이는 단순히 의원급 의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또한 입원 치료 역시 일차의료서비스의 일부이며, 외래는 일차의료고 입원은 이·삼차라는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일차의료의 활성화는 국민들이 가장 손쉽게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전문의 진료 중심의 의원급 진료를 굳이 일반 진료로 격하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 입원 진료 역시 일차의료에서 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에는 존치해야 한다.
다만 일·이차의료는 지역사회 외래 중심, 삼차의료는 입원 및 중증질환 진료와 연구 중심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정부와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국민들의 불편을 줄이면서 적절한 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이차의료에서 삼차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수가 현실화 역시도 동반되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이어온 '저부담 저수가'라는 1970년대 개발도상국 모델에서 '적정부담 적정수가'라는 OECD 선진국 모델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야 제대로 된 일차의료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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