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18]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4)
기사입력 : 2016-05-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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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4)


스르지산에서 내려와서는 두브로브니크성곽을 따라 걸었다. 우리는 성 사비오르교회 옆 작은 공터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 성곽 위로 올라섰다.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높다. 한 발이라도 삐끗해서 굴러 떨어졌다가는 크게 다칠 것 같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은 여러 곳에 있어 중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 있다. 다만 입장권을 보여줘야 하니 마지막까지 잘 보관해야 한다.

파스코야 밀리체비차광장(좌), 로브리예나츠요새(우)
성벽 위로 올라서 남쪽으로 향하면, 먼저 큰 오노프리오샘이 있는 파스코야 밀리체비차(Paskoja Milicevica) 광장을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뻗어나간 스트라둔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침 오노프리오샘 옆에서 누군가 카메라를 들어 나를 찍고 있다. 성벽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내가 멋있어 보였나 보다.

조금 더 가면 성 밖에 서 있는 로브리예나츠요새(Fort Lovrijenac)는 '두브로브니크의 지브롤터'라고도 한다. 해발 37m에 있는 요새에서는 땅에서 필레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두브로브니크 성의 남쪽 바다를 한 눈에 감시할 수 있으니 참으로 절묘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성을 지키기 위한 이런 전략적 장치는 수원 화성에서도 볼 수 있다. 화성에도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성벽에 밖으로 돌출된 망루를 만들어 측면에서 성문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11세기 초에 베네치아가 바로 이 지점에 요새를 세우려 시도하는 것을 격퇴하고, 3개월 만에 이 요새를 지었다고 한다. 요새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실은 베네치아의 후송선단이 도착했을 때는 요새가 이미 완성되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3개의 테라스를 갖춘 삼각형 모양의 요새는 바깥쪽의 벽은 두께가 12m에 달하지만 안쪽 벽의 두께는 60cm에 불과하다. 요새로 들어가는 두 개의 도개교가 있고, 그 위에는 "자유는 세상의 모든 보물을 주어도 팔 수 없는 것이다(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라고 적혀있다.(1) 그들은 이미 자유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좁아 보이는 성벽길(좌), 포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카페(우)
가끔 만나는 작은 망루를 제외하고는 성벽 위에서 땡볕을 피할 곳이 없다. 그래도 남쪽으로 가면 파란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쌓은 성벽에 의지한 카페를 구경하면서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여유를 즐기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하지만, 성벽을 걸어보지 않으면 두브로브니크를 본 것이 아니라고 하니 참는다.

성곽 위에 나 있는 길은 두 사람이 비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다. 그런데 성벽 위를 걷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여유가 많아 보인다. 천천히 걸으면서 성안의 집들도 굽어보고, 성 밖으로 열리는 파란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약속장소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무래도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혹시 놓치면 아쉬울 것은 없나 살펴보느라 눈이 분주하다. 이날 저녁 숙소에 들어 성벽을 걷던 내 모습을 되짚어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엔가 쫓기듯 사방을 둘러보던 내 모습이 혹시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쉼을 구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것이었을까?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면서 나는 여전히 빠름빠름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성벽은 사람들이 7세기 무렵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살 무렵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경계에 목책을 세운 정도였을 것이다. 8세기 무렵 사라센의 침략에 대비하여 석회암으로 요새를 구축하였던 것을 12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서 지금과 같은 견고한 성벽을 쌓아올린 것이다.

구시가지를 완벽하게 감싸는 성벽은 1940m에 달하고 가장 높은 곳은 25m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성곽에는 3 개의 원형탑과 14개의 사각형 탑 그리고 5개의 보루를 세웠다. 성벽 밖으로는 해자를 둘렀고, 120문의 대포를 설치하여 방어능력을 보강했다.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서, 내륙 쪽의 성벽은 4m에서 6m의 두께이나, 바다 쪽의 성벽은 1.5m에서 5m의 두께로 쌓았다.

내륙쪽으로는 서쪽으로 필레문(Gate of Pile), 동쪽으로 플로체문(Gate of Ploče)을 냈고, 북쪽으로는 1900년대에 만든 부자문(Gate of Buža)이 있다. 내항 쪽으로는 폰테문(Gate of Ponte)과 어시장문(Fishmarket Gate)이 있다.

내항의 플로체문 가까이 도미니크 수도원이 있다. 1225년 무렵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온 도미니크 수도회가 이 수도원을 완공한 것은 14세기에 들어서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교회가 성벽의 일부가 되었다. 단순한 고딕양식의 수도원은 세 개의 높은 고딕양식의 아치로 된 입구가 남쪽으로 나있다. 많은 보물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앙제대에 있는 황금십자가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파올로 베네치아노(Paolo Veneziano)의 작품인 십자가의 중앙에 예수상이 조각되어 있고, 네 끝에는 복음서의 저자들이 새겨졌다. 십자가 아래로는 비탄에 빠진 성모와 성요셉이 비잔틴-고딕양식으로 조각되어 있다.(2)

도미니크 수도원(좌), 민체타탑(우;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요새로는 북쪽 끝에 있는 민체타탑(Minčeta Tower)이 가장 크다. 이 탑은 1463년에 교황 피우스 2세(Pius II)가 보낸 이탈리아 기술자와 함께 지역 건축가 니치포르 란히나(Nicifor Ranjina)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네 면으로 된 민체타탑은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커지는데 대한 불안감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민체타탑이 건설되면서 두브로브니크성은 정복할 수 없는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3)

1991년 유고연방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집터
성벽의 전체 길이가 2km남짓했으니 아무래도 성안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민체타탑에서 굽어보는 성안은 온통 붉은 지붕 일색이다. 간혹 무너진 건물의 벽만 서 있는 공터가 눈에 띈다. 1991년 10월 세르비아계가 장악한 유고연방군과 몬테네그로 예비군이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3개월간에 걸쳐 퍼부은 포격으로 입은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포격이 시작되자 유엔과 서구세계는 세계의 집단건축유산에 대한 공격이라며 즉각 대응하였다. 런던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로마로 진격하려는 야만인 무리처럼 연방군은 모든 규제를 벗어던졌다."라는 머릿기사로 세르비아를 규탄했다.

세르비아가 두브로브니크를 탐낸 이유는 해안을 확보하여 내륙국 신세를 벗어나려는데 있다고 했던 것은 역사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단순히 테러와 반달리즘에 불과했던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4)

르 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두브로부니크가 베이루트나 앙코르와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평화와 문화의 위대한 운동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두브로브니크가 폭탄세례의 희생자가 된다면 그처럼 가증스러운 범죄를 방치한 유럽이라면 더 이상 대접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5)"라고 관심을 촉구한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장 도르메송(Jean d'Ormessono)은 아카데미 프랑세스의 동료회원들과 함께 두브로부니크로 들어가 몸으로 포격을 막겠다는 '인간사슬'을 자청하고 나섰다.

헬기를 이용하여 공중낙하한다는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지만 13명의 동료들이 범선 크릴라 두브로브니카를 타고 두브로브니크에 접근했지만, 유고해군의 총부리에 막혀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귀국 후에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하여 두브로브니크를 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성벽 아래 좁은 공간을 차지한 카페
걸어서 성곽을 돌아본 다음에는 루자광장에서 일행을 만나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내항을 나서 성벽을 따라가다가 바다 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성 앞에 있는 로크룸섬을 돌아오는 항로이다. 해안 절벽 위로 아스라하게 높은 두브로브니크 성의 웅장한 모습은 물론 해안까지 나무가 내려와 있는 로크룸섬도 볼만하다.

로크룸섬에도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고 한다. 나체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고, 합스부르그가의 맥시밀리안 페르디난드(Maximilian Ferdinand)대공이 만든 아름다운 식물원에는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옮겨온 500여종의 나무와 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50년 전에 카나리아제도에서 옮겨온 공작새도 볼 수 있다. 베네딕스 수도원에서는 중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데, 12-13세기 무렵에 지은 로마네스크-고딕양식의 성당과 함께 15세기에 지은 고딕-르네상스양식의 수도원이 있다.(6)

참고자료

(1) Wikipedia. Lovrijenac.
(2) Dubrovnik City. Dominican Monastery - Dubrovnik.
(3) Wikipedia. Walls of Dubrovnik.
(4) 로베트 베번 지음. 집단기억의 파괴 146쪽, 알마, 2012년
(5) NewYork Times 1991년 10월 8일자 기사. Civil War Nears Renaissance City: Spare Dubrovnik, Unesco Chief Pleads.
(6) Like Croatia. 6 Things you can do on Lok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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