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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순 등 의사출신 독립운동가 156명 발굴

박진규
발행날짜: 2008-03-02 22:01:48

3.1운동 때 경성-세브란스의전 학생 활동 두각

대한의사협회는 의협 창립 100주년을 맞아 156명의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역사적 위상 정립과 의사 사회의 정체성 및 방향성을 재설정하기 위한 조사연구를 실시했다고 2일 밝혔다.

의협은 독립운동에 참가한 의사와 의대생들을 추적․정리하였고 의사들이 민족문제에 맞서기 시작한 1907년 이후부터 해방되던 1945년까지를 조사․연구 범위로 삼았고 국내는 물론 만주를 포함한 중국지역, 러시아, 연해주지역, 몽골지역, 일본과 미국 등 모든 지역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의협은 금번 조사연구 결과 독립운동에 행적을 남긴 의사 독립운동가 156명을 발굴하여 정리했는데, 이 가운데 67명은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고, 89명은 아직 포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사출신이거나 의학도들이 참가한 독립운동은 무엇보다 1910년 국치 직후부터 시작된 독립군기지 건설 활동이 돋보인다.

만주 독립운동 기지가 그렇고, 동부 몽골과 몽골, 러시아 연해주, 상해를 중심으로 삼은 중국지역 등에서 활동한 의사들의 행적이 그 대표적이다.

3․1운동에서는 경성의전과 세브란스의전 학생들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활동한 인물들이 속출했고, 1920년대에는 국내 출신만이 아니라 중국 상해와 항주지역 의학교를 졸업한 인물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또 1920년대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의 군의로 활동한 인물이 눈에 띄고, 1930년대와 1940년에 걸쳐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군의로 활약한 인물도 여럿 있었다.

의사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실로 다양하고 포괄적이었다.

1907년 구국계몽운동 조직인 신민회가 결성되자, 김필순이 여기에 참가하였고, 이것이 의학도들이 참가한 독립운동의 서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망국 전야에 이완용 처단 시도 의거인 명동성당 앞 ‘이재명의거’에 참가했던 오복원과 김용문의 활동이 1909년 12월에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오복원과 김용문은 각각 10년형과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독립군 기지 건설, 3․1운동 선두 지휘, 3․1운동 이후 의열투쟁․경성의전 맹휴 투쟁․사회운동과 6․10만세운동 등의 국내 항일투쟁,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독립군․광복군 군의로 활동, 해방 전야의 학생운동(광복 직전 학생비밀결사, 흑백당, 조선민족해방협동당 등)를 지속적으로 펼쳤다.

독립운동가 중 특기할 만한 인물로는 김필순, 이태준, 이자해를 들 수 있다.

김필순(1878-1919, 제중원의학교 졸)은 만주와 내몽고 지역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했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이에 항의하던 시가전 중 부상병들을 치료하면서 민족문제에 적극 대응했고, 그 직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간도, 북경을 거쳐 몽골과 가까운 치치하얼에서 병원을 열어 독립운동 기지 및 연락거점으로 활용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이태준(1883-1920, 세브란스의학교 졸)은 몽골지역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했고 신민회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면서 민족문제에 깊이 개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이태준은 남경지역으로 망명이후 울란바토르로 이동해 동의의원을 개업하여 명성을 얻었고 몽골 왕궁을 출입하며 국왕의 어의가 되어 이상촌 건설이라는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레닌자금 운송 책임자 역할을 했다. 이후 북경에서 의열단에 가입하고 폭탄제조 전문가를 소개하여 의열단의 투쟁을 본격화하는데 기여했다.

이자해(1893-1960)는 1919년 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소식을 접하고, 서간도지역으로 건너가 대한독립단에 가담했다. 이후 북경으로 건너가 중국군 제18기병연대 야전병원장을 맡으면서, 광복군의 교두보를 만들어 나갔다. 이는 중국북부지역에서 한인 청년들을 초모하며 광복군으로 보내는 등 전방기지이면서 연락거점 역할을 했다.

금번 조사연구의 책임연구자인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의사출신 중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67명으로 전체 포상자의 0.6%에 지나지 않지만 의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라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인 그룹, 새로운 상층부를 형성하기 시작한 직업군 가운데서 의사들의 참여도는 어느 직업군보다 앞선다. 이는 새롭게 떠오른 Noblesse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 즉 Oblige를 다하려 했던 모습을 의사출신 독립운동가의 자취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금번 의사출신 독립운동가 발굴 조사연구는 의협창립 100주년기념에 걸 맞는 의미 있는 조사연구 결과로, 의사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우리 의사들에게 나아갈 방향성 제시는 물론 사회적 책무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하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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