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글로벌 심혈관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생분해 스캐폴드, 즉 '녹는 스텐트' 기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안전성 문제로 고배를 마셨던 애보트가 다른 시장을 겨냥해 재도전을 시작한 것. 이에 따라 과연 과거 좌절을 딛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애보트가 약물 방출 생분해 스캐폴드 '에스프리 BTK(Esprit BTK)'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공개하며 부활을 예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프리 BTK는 일정 기간 혈관을 지지한 뒤 체내에서 분해되는 약물 방출 생분해 스캐폴드다.
기존 금속 스텐트가 혈관 안에 영구적으로 남는 구조라면 이 제품은 시술 초기에 혈관을 안정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여기에 항증식 약물인 에버롤리무스(everolimus)를 코팅해 시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재협착을 억제하도록 설계됐다.
결과적으로 금속 스텐트의 지지력과 약물코팅기기의 재협착 억제 효과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체내 이물질을 남기지 않는 구조를 구현한 셈이다.
애보트가 겨냥하는 시장은 무릎 아래 혈관(BTK, below-the-knee)이다.
이 부위는 말초동맥질환 환자 중에서도 치료 난도가 높은 영역으로 특히 만성 사지 허혈(CLTI) 환자에서는 절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고위험 부위로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풍선확장술은 재협착률이 높고 금속 스텐트는 장기 이물질 문제로 적용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약물코팅풍선 역시 구조적 지지 기능이 없어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BTK 영역은 오랫동안 명확한 해법이 없는 시장으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치료 옵션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애보트의 새로운 공략 지점이 된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데이터는 약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사후연구(PAS)의 중간 결과로 시술 이후 혈관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 결과 30일 기준 표적 병변 재시술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주요 이상 사건 발생률 역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절단과 같은 중대한 합병증도 제한적으로 나타났으며 기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안전성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다.
BTK 시장에서는 시술 이후 다시 막히는 문제, 즉 재협착이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그런 점에서 초기 단계지만 재시술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결과는 의미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생분해 스캐폴드 기술의 과거 때문이다.
애보트는 과거에도 관상동맥용 생분해 스캐폴드 앱소브(Absorb)를 출시했지만, 혈전 위험 증가 등 문제로 시장에서 철수한 경험이 있다.
이후 생분해 스텐트는 업계 전반에서 한계가 분명한 기술로 인식돼 왔고 개발에 나서는 기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보트가 다시 이 카드를 꺼내고 임상까지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애보트의 전략이 숨어있다. 과거에는 관상동맥이라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을 겨냥했다면 이번에는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말초혈관, 특히 BTK 영역으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즉, 동일 기술의 단순 재도전이 아니라 적용되는 시장을 바꿔 새로운 기회를 찾는 접근을 택한 셈이다.
현재 말초혈관 치료 시장은 풍선확장술, 약물코팅풍선, 금속 스텐트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각 치료법은 명확한 장단점을 갖고 있지만 특정 환자군을 완전히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가운데 에스프리는 구조적 지지와 약물 전달, 그리고 생분해라는 요소를 동시에 결합하며 기존 치료 옵션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 치료를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하는 형태로 시장 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애보트가 노리는 것은 단순 제품 확대가 아니라 치료 흐름의 변화다.
특히 만성 사지 허혈 환자는 반복 시술과 장기 관리가 필요한 대표적인 환자군이다. 이 시장에서 한 번의 시술로 장기간 혈관을 유지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등장한다면, 치료 전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에스프리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말초혈관 치료의 접근 방식을 바꾸려는 전략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미 한 차례 시장에서 실패를 경험한 기술로 여전히 미충족 수요가 큰 시장에서 다시 한번 검증을 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보트 관계자는 "일단 시판 후 연구의 초기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며 "현재 BTK 시장은 미충족 수요가 매우 큰 영역인 만큼 에스프리 BTK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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