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글로벌 의료 시장이 AI 전환(AX)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하면서, 국내 의료 AI 기업들 역시 그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단순 영상 판독이나 진단 보조 솔루션 공급에 머물렀던 과거에서 벗어나, 질환 전주기 케어와 병원 운영 플랫폼 구축 등 사업 다변화에 나서는 모습.
하지만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말 그대로 동일한 솔루션이 범람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없이는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람하는 의료 AI…'필수재' 되기 위한 체질 개선 필요
1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의료 인공지능(AI) 시장이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 갈림길에 선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 솔루션 공급자가 마주한 과잉 경쟁과 낮은 전환 비용이 한계로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특정 기능에 국한된 솔루션은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까지 다난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정작 진입 후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범용 도구'에 머무를 위험이 크다.
더욱이 기술 상향 평준화가 가속화되는 환경에선 단순 기술적 우위만으로 후발 주자의 추격과 기술 노후화를 방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임상 현장 의사결정 및 병원 운영 체계에 깊숙이 침투하는, 필수 불가결한 '인프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 것.
실제 국내 의료 AI 산업은 초기 영상 판독 보조 기술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후 우후죽순 등장하는 후발 주자와 기술 평준화로 레드오션이 됐다.
단순히 의사의 판독을 돕는 수준의 솔루션은 병원 입장에서 쉽게 대체 가능하며, 실제 수가 체계 진입이나 수익 창출 면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단편적인 기능을 넘어 치료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전주기 케어'와 병원 운영의 필수 체계인 '인프라화'에 집중하고 있다. 각자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특정 질환의 검진부터 치료, 사후 관리까지 모든 임상 경로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묶어 타사 제품이 진입할 틈을 차단하는 것. 특히 의료진의 실무 워크플로우에 솔루션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경우, 단순 기능적 편의를 넘어 임상 현장의 루틴 자체에 안착하는 락인(Lock-in)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 AI 기업들의 이런 변화는 당연한 흐름이다. 단적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만 봐도 다른 서비스나 기기와 연동되지 않으면 금방 대체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의료 현장은 더하다"라며 "특정 기능에만 국한된 AI 솔루션은 실제 임상 워크플로우의 복잡함을 견디기 어려워 결국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병원만 해도 여러 회사의 솔루션을 사용 중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솔루션과 동일한 기능을 플랫폼화한 다른 의료 AI 기업이 출시한다면, 해당 솔루션은 교체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전주기 케어, 인프라 운영, R&D…비즈니스 모델 다변화
이중 의료 AI 시장을 연 진단 보조 솔루션 기업들은 특히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검진부터 치료, 경과 관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전주기 AI 케어 플랫폼' 모델을 속속 도입하는 상황이다.
일례로 루닛은 암 조기 발견을 위한 판독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를 넘어, 항암제 반응을 예측하는 루닛 스코프를 통해 환자별 최적의 치료법 선택까지 지원한다. 진단과 치료 결정을 잇는 암 정밀 의료의 전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한 셈이다.
제이엘케이는 뇌경색 진단 보조를 포함해 뇌졸중의 진단, 예후 예측 등 10여 개의 솔루션으로 응급실부터 퇴원 후 관리까지의 경로를 통합 관리한다. 휴런 역시 뇌졸중 응급 선별과 치매·파킨슨병 등 퇴행성 질환의 조기 진단을 결합해 급성기 대응과 만성 관리 전반을 아우르는 뇌신경 질환 전문 플랫폼을 구축했다.
로킷헬스케어는 4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당뇨발 환자의 자가 조직을 재생하는 플랫폼을 '역노화'로 확장하고 있다. 연골과 신장 등 장기 재생 및 탈모 치료 라인업 구축을 서두르며 재생 의학 중심 케어 인프라로 도약하려는 모습이다.
병원 운영 체계와 임상 워크플로우에 실시간으로 통합되는 기술도 있다. 뷰노의 뷰노메드 딥카스와 에이아이트릭스의 바이탈케어는 일반 병동 환자의 심정지나 패혈증 위험을 실시간 예측해 전자의무기록(EMR) 및 신속대응시스템(RRS)에 연동된다. 이는 의료진의 의사결정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환자 안전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필수 지원 체계로 기능한다.
큐렉소는 AI가 수술 계획을 수립하고 로봇이 이를 실행하는 자동화된 수술 워크플로우를 통해 임상 현장의 물리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웨이센은 클라우드 연결 없이 로컬 환경에서 작동하는 실시간 내시경 영상 분석 기술을 통해 검사실 워크플로우에 즉각적으로 알림을 제공하며 의료 현장의 실시간 판단을 돕는다.
의료 데이터 AI 인프라 및 신약 개발 R&D 플랫폼도 한 축이다. 특히 코어라인소프트는 대규모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판독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중앙 운영 플랫폼 에이뷰 허브(AVIEW HUB)를 공급한다. 이를 토대로 유럽 국가 단위 폐암 검진 및 국내 공공의료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딥노이드는 노코드 플랫폼 딥파이(DEEP:PHI)를 통해 의료인이 직접 AI 모델을 설계하고 배포하도록 돕는다. 병원이 외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AI를 구축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의료 현장 스스로 AI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
이와 관련 코어라인소프트 관계자는 "시장의 초점은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AI를 어디에 배치하느냐'다"며 "일례로 국가 단위 검진에서 시장은 단건 도입이 아닌 표준 프로세스 단위로 고착화된다. 이는 의료 AI가 '제품 판매'보다 운영 인프라 경쟁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이 구도에서 파일럿 경험과 운영 데이터는 진입장벽이 된다"고 말했다.

쓰리빌리언, 신테카바이오, 뉴로핏 등은 바이오 R&D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드라이랩(Dry-lab)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쓰리빌리언은 희귀 질환 유전체 진단 플랫폼 GEBRA를 통해 방대한 변이 데이터를 해석하며 신약 타깃 발굴을 위한 핵심 데이터 기반을 제공한다.
신테카바이오는 AI 신약 개발 플랫폼 딥매처를 활용해 후보 물질 발굴 과정을 디지털화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뉴로핏은 뇌 영상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의 알츠하이머 신약 임상에서 임상시험수탁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등 뇌 영상 기반 바이오마커 분석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AI 기본의료'로 패러다임 전환 "기술 넘어 가치의 설계로"
이런 기업들의 변화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제시하는 'AI 기본의료'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진흥원은 최근 보건산업정책연구를 통해, AI를 단순한 산업 육성 수단이 아니라 의료의 접근성, 연속성, 형평성을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의료는 낮은 의료비 대비 높은 성과를 거두는 '양적 효율'을 달성해 왔다. 하지만 집중과 과밀, 반복과 분절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정보시스템(HIS)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환자 생성 데이터(PGHD)까지 통합 관리하는 '건강정보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
국내 의료 AI 기업들의 사업 다변화는 결국 이러한 '연결된 시스템' 위에서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AI는 환자 위험 징후 실시간 포착 및 환자 분류, 검진·사후 관리 등 치료의 전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한민국 의료 AI 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기술 고도화를 넘어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진흥원 역시 기술 예산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의 설계'라고 제언했다.
AI가 일부 수도권 대형병원의 경쟁력 강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지역 공공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일상 업무에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는 '적정기술'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이지선 책임연구원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환은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정책, 산업 구조, 의료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이제 필요한 질문은 'AI를 얼마나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작동하도록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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