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의 이면에 의약품 유통 구조와 공급 이윤이 맞물려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의약품 가격 인상 한계에 직면한 정책 로비스트들이 처방 확대 수단으로 의대 증원을 종용했다는 주장이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는 지난달 30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대폭 확대한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를 공개했다. 의료체계 붕괴를 초래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사실상 의약품 판매 구조와 밀접하게 연동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연구는 의대 증원으로 현장에서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고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약 1만 명의 의사 이탈과 병원 운영 마비 등 극심한 혼란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적정한 진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의사 수를 늘리려다 의료체계 붕괴 비용을 치렀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의사 수 부족으로 이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는 입장이지만,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의 보상 구조와 이윤 확보 동기가 정책 결정의 원인이 됐다는 것.
연구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약품비와 약제비 데이터를 통해 사립병원과 국립병원의 구조적 차이를 비교했다. 비교 대상은 대한제국 시절 설립돼 근거리에서 비슷한 규모로 운영 중인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이었다.
이 두 병원을 비교한 결과 약제비와 약품비의 증감 추이가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2009~2012년 사이에는 국립병원의 약제비가 우세했지만, 2012~2019년에는 사립병원의 약품비가 앞섰다. 2019년 이후에는 다시 국립병원의 약제비가 우위를 점하는 양상이었다.
또 연구는 세브란스병원에선 연세대학교 운영 직영 도매사가 약품비를 결정했고, 서울대병원은 제약사 경영자가 운영하는 구매대행사가 약제비를 정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약제비는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지불하는 순수 약값이며, 약품비는 여기에 유통 이윤이 포함된 수치다. 통상 약품비는 약제비의 1.5배 수준이라는 게 연구의 설명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약제비가 증가하기 시작해 2019년에는 약품비를 넘어서게 됐다는 것.
이 원인은 2010~2014년 시행된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폐지라는 게 연구의 진단이다. 이 제도로 병원과 약국이 저가 의약품을 구매할 경우 정부로부터 구매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받는 방식이 도입됐다. 이 때문에 국립병원의 약제비는 감소했고, 사립병원의 약품비는 유지되거나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실거래가 제도가 폐지된 2014년 이후, 약제비는 급격히 상승하며 2019년에는 약품비를 추월했다. 이에 따라 국립병원은 인센티브 없이 진료 인력 확충 등으로 경영 손실을 만회해야 했고, 서울대병원의 의사 급여는 사립대학병원의 70% 수준에 머물렀다는 분석이다. 국립병원의 약제비는 상승했음에도 이윤 회수가 어려운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또 연구는 이 시기 구매대행사 관리 인력이 병원으로 복귀해 관리자에 임명되는 등 양측간 인사 교류가 활발했다고 지적했다. 즉 병원이 인센티브를 위해 저가 의약품을 찾으려던 상황에선 가격 억제가 이뤄졌지만, 실거래가 제도가 폐지되면서 그 효과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의약품 가격이 상승했고, 이는 정책 실패와 기업 로비의 결과라는 것.
이어 연구는 의약품 가격 인상의 한계에 직면한 정책 로비스트들이 처방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택했고, 정부가 이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의사 수가 늘면 의약품 공급도 늘어나고, 이에 따른 유통 이윤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연구 저자인 이종훈은 "결국 정부의 시장 정책 실패와 규제 포획의 결과로 의약품 가격이 상승하고, 병원 간 유통 이익 배분 구조가 왜곡됐다. 기업과 정부, 도매상 간의 긴밀한 인사 교류와 로비가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며 "이는 단순히 의료 인력 확충의 문제를 넘어, 국민 건강과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에서, 의약품 공급 이윤의 한계에 부딪힌 정책 로비스트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처방과 공급 자체를 늘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의약품 공급 이윤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연구는 최근 들어선 정부에도 반성과 성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있는 인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연구는 조지 스티글러 교수의 규제 포획 이론을 인용했다, 정부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제가 시간이 지나 기업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현상이 이번 사례에도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의료 정책이 공공의 이익보다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은 외면받았다는 것. 그러나 과거 정책에 기여했던 인사들이 여전히 요직에 남아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일련의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정부의 공공의 이익 실현 의지는 실종됐다. 조지 스티글러의 규제 포획 이론처럼, 규제는 결국 기업 이익에 봉사하게 됐고 의료 정책은 이윤 추구와 사익 획득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시민들은 의료 현장의 혼란을 직접 겪으며, 의료와 보건 정책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어 "새 정부에 반성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책 실패에 기여한 인사들이 주요 요직에 남아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며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한 진정한 의료 정책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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