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수익보단 환자 위한 투자…수가 구조 개선 절실"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의료 AI가 급속히 발전·확산하고 있지만, 일선 개원가에선 여전히 '그림의 떡'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도입 비용 대비 수가 보상이 턱없이 부족해 경영상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AI 기업이 국내 수가 진입 장벽에 막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현실이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 AI를 진료 전반에 도입한 병원이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강남지인병원 조원영 대표원장을 만나 그가 체험한 의료 AI의 현실과 정부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메디칼타임즈는 강남지인병원 조원영 대표원장을 만나 그가 체험한 의료 AI의 현실과 정부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AI, 환자 안전 위한 선택"…현장이 느끼는 효과는조 원장은 AI가 당장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은 아니지만, 환자 안전과 의료진의 삶을 바꾸는 유효한 도구라고 강조했다.강남지인병원은 현재 내시경뿐 아니라 흉부 CT, 관상동맥 석회화, 안저 검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를 활용 중이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학교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 사업에서도 AI의 효용성을 체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진단 결과가 시각화된 데이터와 점수로 제시되면서, 환자 설명 과정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조 원장은 조 원장은 "교육청 주관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을 진행 중인데, AI가 흉부 CT에서 폐암이나 폐 병변을 확인하는 능력이 해가 갈수록 개선되는 것이 체감된다"며 "관상동맥 석회화 분석 AI도 정도를 점수로 정량화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니,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심혈관 질환 위험을 설명하고 고지혈증 약 처방 등 치료를 권유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그는 이런 AI 도입을 '오진을 막는 이중 잠금장치'에 비유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컨디션 난조나 피로 누적으로 인해 미세한 병변을 놓칠 수 있는 '휴먼 에러'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때 AI가 오류 가능성을 한 번 더 걸러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의료진의 업무 환경 변화도 간과할 수 없는 효과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1차 판독 업무를 AI가 보조해 주면서, 의사는 최종 판단과 환자 소통 등 더 고차원적인 의료 행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그는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을 쓰던 사람이 다시 피처폰으로 돌아가면 답답해서 못 쓰는 것과 같다"며 "AI가 잡아주는 미세 병변이나 석회화 수치 등을 보다가 갑자기 AI 없이 진료하라고 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경영자 입장에서 비용 회수가 쉽진 않지만, 진료의 질 향상과 환자가 누릴 무형의 이득을 고려하면 계속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AI 발전에 따라, 진단 영역을 넘어 병원 행정 자동화에서 올 효과에도 기대감도 내비쳤다. 특히 조 원장은 보험 청구 과정에서의 실수를 잡아주는 AI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수가 청구 과정에서 누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은 누락 건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그는 "병원 행정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업무다. 청구 누락 방지나 자동 서류 작성 등 행정 AI가 도입된다면 직원들의 업무 로딩을 줄이고, 그 시간을 환자 케어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AI 발목 잡는 수가…의사 업무량 삭감 우려도조 원장은 AI 도입 계기로 병원의 기치인 '친절한 의료 서비스'를 꼽았다. 친절은 단순히 상냥한 태도가 아니라, 환자의 병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의료적 완결성'에 있다는 설명이다. AI 도입이 당장의 금전적인 이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진을 줄이고 환자 안전을 지키는 '무형의 이득'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강남지인병원에서 사용 중인 관상동맥석회화 분석 AI 솔루션 화면더욱이 도입 초기엔 오히려 기술적 한계로 인한 피로감도 상당했다. 특히 내시경 AI의 경우, 초기 모델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 병변이 아닌 것까지 잡아내는 '위양성' 문제가 있었다.조 원장은 "초창기 내시경 AI는 병변이 아닌 것까지도 문제 삼는 위양성 진단이 많아 오히려 의료진을 피로하게 만들었다"며 "하지만 최근 업데이트를 거치며 민감도와 특이도 균형이 잡혔다. 국내 기업들은 현장 피드백을 반영해 난사하듯 잡아내는 오류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평가했다.하지만 국내 의료 AI 산업은 구조적 모순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혁신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우리나라의 낮은 수가 정책으로 오히려 글로벌 진출이 발목 잡히는 모양새다.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 기업과 계약할 때, 한국 내에서의 수가나 공급 가격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국내에서 헐값에 공급되는 소프트웨어를 해외에서만 비싸게 팔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수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 모델이 만들어져야, 이를 근거로 해외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국내 AI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해외 무대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한국의 저수가 환경이 이들의 해외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정부가 AI 수가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AI 도입을 '의사 업무량 감소'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라는 한정된 파이 안에서, 기존 의료진의 행위료를 삭감해 의료 AI 기업을 보상하겠다는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 하지만 이런 '제로섬' 방식은 의료계의 필연적인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조 원장은 "AI 기업들이 해외에 수출하려면 자국 내 레퍼런스 가격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수가가 워낙 낮게 책정되다 보니 수출 가격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며 "국내에서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돼야 기업들도 이를 근거로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현실은 저수가 기조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이어 "상대가치점수를 산정할 때 가장 큰 비중이 의사 업무량인데, 정부는 AI가 의사를 도와주니 그만큼 의사 업무량을 줄여 수가를 낮추려는 식의 접근을 한다"며 "AI 수가는 기술료로서 별도로 인정받아야지, 의사 업무량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이는 결국 전체적인 수가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해 병원들의 AI 도입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의료진 부담 낮춰주는 AI "의료 본질에 더 집중"마지막으로 조 원장은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진료를 위한 '보조 의사'임을 강조했다. AI가 이상 신호를 보내면 의사가 해당 부위를 정밀 재검토하고, 반대로 의사의 임상적 판단이 AI와 다를 경우엔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현장에서 의사가 AI의 오류를 수정해 데이터를 보내면, 기업이 이를 재학습 시켜 AI의 정확도를 높이는 상호 발전적인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재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의료 AI를 투자적 관점에서 보는 시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조 원장은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비용으로만 보지 말고, 미래 의료를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AI 급여화는 단순한 퍼주기가 아니라, 조기 진단과 예방을 통해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을 절감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강조했다.이어 "결국 AI로 의료진의 판독·문서화 부담이 감소하면서 의사는 환자와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의료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며 "현장의 의사들이 경영적 부담 없이 소신껏 최신 기술을 활용해 환자를 살릴 수 있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수가 정책과 유연한 규제 적용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