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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다는 것, 기어이 대면한다는 것

조선의대 2학년 박요한
발행날짜: 2026-07-27 05:00:00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박요한

<에스키모인들의 늑대 사냥법>

1. 가축의 피를 칼날에 묻혀 얼린 후 칼을 거꾸로 꽂아 놓는다.
2. 피 냄새를 맡고 온 늑대가 언 피를 핥는다.
3. 언 피가 녹고 드러난 칼날이 늑대의 혀를 벤다.
4. 혀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무작정 칼날을 핥으며 출혈로 쓰러진다.

위 과정은 널리 알려진 에스키모인들의 늑대 사냥법이다. 실제로 행해진 사냥법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내 기억에 남았다. 혹자는 이러한 사냥법을 통해 늑대의 탐욕을 지적한다. 하지만 나는 마냥 그렇게만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생존에 대한 그들의 간절함을, 탐욕이라는 두 글자로 단순히 설명해버리는 데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늑대는 정말 그저 욕심이 많았던 것일까. 아니, 늑대는 간절했던 거다. 늑대는 살고 싶었던 거다. 그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추운 밤을 힘겹게 견디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늑대는 생각했겠지. 이건 먹을 수 있는 고기야. 조금만 더 핥으면 얼어붙은 고기가 녹을지 몰라. 그렇게 칼날을 묵묵히 핥았고, 늑대는 죽어갔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상하게 늑대가 보이지 않았다. 늑대가 아니라 내 모습이 보였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점철된, 날카로운 현실을 그저 묵묵히 핥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기대하며 산다. 어릴 적에는 기대의 크기도 컸다. 세계정복을 꿈꾸고, 우주를 탐사하겠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은 작고 좁았지만, 마음속에 품은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명문 학교에 들어가길 기대했고,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길 기대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기대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기대는 매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의과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더 그랬던 것 같다. 원하던 꿈에 닿으면 더 많이 기대하게 될 줄 알았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더 나은 복지제도를 구상하고, 질병의 생물학적 치료법에 관한 연구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오자, 나는 더 크게 기대하는 법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지나가기만 하면 언젠가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게 되는 일에 가까웠다. 기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면을 미루고 있었던 셈이다. 기대를 멈추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덜 묻게 되었다.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정말 나를 살리는 고기인지, 아니면 나를 조금씩 베고 있는 칼날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현실을 핥았다. 가능성이라는 피 냄새에 기대어 그저 버텼다.

나이를 먹어가며 누구나 기대의 크기는 줄어든다. 세계정복이나 우주 탐사 같은 말은 사라지고, 올해는 다르겠지, 다음 주에는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작고 소박한 기대만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대가 가벼워진 이유가 단지 어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오히려 마주한 현실이 너무 무거워서다. 버거운 현실 앞에서 사람은 기대를 키우기보다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다. 기대했다가 깨져보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기에. 그렇지만 정말 기대하지 않는 삶은 덜 아픈 삶일까.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기대를 접었다고 해서 현실의 칼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을수록 나는 더 무뎌지고 다쳤다. 무뎌진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감각이 사라진다는 뜻에 가까웠다. 늑대가 혀의 감각을 잃고 무엇을 핥는지 구분하지 못하듯, 나 역시 무엇이 나를 살리고 해치는지 모른 채 그저 버티며 아파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어릴 적 나로 돌아가 다시 기대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다만 그때처럼 순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 무작정 잘될 것이라고 믿는 기대, 칼날을 고기라고 우기는 기대는 결국 나 자신을 해칠 뿐이니까. 그러므로 기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막연히 믿는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붙잡은 것이 나를 살리는 고기인지, 나를 베는 칼날인지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간절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계속 되묻는 일이다.

그러니 나는 다시 기대하고 싶다. 오늘 하루조차 살아내기 버겁더라도, 보는 순간 움츠러드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기대하고 싶다. 기대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움직일 수 없고, 오늘의 고통도 내일의 방향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대는 시간을 견디게 한다. 아무도 나를 기대하지 않고, 내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사람은 기대해야 하루를 버틴다. 노력 역시 결국 기대와 다르지 않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인간은 긴 시간 동안 노력을 지속할 수 없다.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하루를 견디고 다시 쌓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된다. 내가 바라던 곳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런 기대 섞인 하루들이 모여 나를 데려다 놓은 자리였다는 것을.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는 나를 기대했다.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진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경험들을 곱씹으며 흩어진 감정들이 문장이 되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이 글이 되면, 나도 나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조금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일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쓰며 나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글은 나를 곧장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글은 내가 깊어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숙해지고 싶은 나, 괜찮아 보이고 싶은 나, 아픔을 그럴듯한 예쁜 문장으로 정리하고픈 나를 보게 했다. 단정한 글을 쓰면 상처가 단정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문장 앞에 앉으면 여전히 아파하고 흐트러진 내가 있었다.

이제는 안다. 글쓰기는 나를 성숙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눈앞에 놓여있는 가능성의 정체를 끝끝내 확인하는 일이라는 걸. 내가 줄곧 핥고 있던 것이 나를 살릴 고기인지, 아니면 나를 베어낼 칼날인지 문장마다 살며시 더듬어보는 일이라는 걸.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기대하는 일이자 동시에 대면하는 일이라는 걸.

이번 칼럼은 메디컬타임즈에 기고하는 나의 마지막 칼럼이다. 부족한 글들이었지만, 이곳에 문장을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은 참으로 내게 감사한 기회였다. 이곳에서 나는 나의 무너진 시간에 관해 쓰기도 했고, 어른이 되는 일에 관해 쓰기도 했으며, 의사의 무게에 관해 쓰기도 했다. 물론 글을 쓰며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단번에 깊어지지도, 쉽게 성숙해지지도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나를 마주해야 했다. 외면하고 싶던 마음,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던 상처, 그래도 다시 나아지고 싶다는 기대를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며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지막 칼럼에서 다시금 기대에 관해 쓰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남긴 글들은 결국 나의 연이은 대면이었고, 다시 나아지고 싶다는 기대의 파편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메디컬타임즈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준 누군가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여전히 기대하고 기대하길 반복할 거다. 다만 이제는 칼날을 고기로 착각한 채 무작정 핥고 싶지 않다. 아프더라도 그것이 칼날이라면, 칼날이라고 냉정히 바라보고 싶다. 기대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기어이 대면한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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