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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실습의 당황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황다예
발행날짜: 2021-11-15 05:45:50

황다예 학생(동국의대 예과 2학년)


'Mortui Vivos Docent(모투이 비보스 도슨트)'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들었던 문장이자, 모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실 앞에 걸린 문구로 잘 알려진 말이기도 하다.

해부 학기를 시작하며,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여타의 과목들과 해부학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인체를 직접 보고 만지고 다루는 과목이므로 당연히 그렇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선배들의 말과 글로 상상해 볼 수 있는 해부학이라는 학문은 '포르말린 냄새', '땡시', '구연발표(오랄 테스트)', '밤샘' 정도의 키워드로 요약 가능했다.

당연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은 되었지만 내가 시신을 해부하게 된다는 사실은 막연하고 어렴풋하게만 다가왔다. 여름방학에 진행된 골학을 들을 때까지, 아니 사실 해부학 과목이 개강하고 이론 수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넣는 데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첫 실습까지는 한참이 남았었던 언젠가, 그저 미리 한 번 봐 두면 적응이 빠르겠다 정도의 마음으로 유튜브에서 'anatomy dissection'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을 몇 개 시청했다. 근육과 신경, 혈관 등이 교과서 그림 만큼은 아니지만 잘 정리되어 있었고 색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편이었다. 이론 공부만 열심히 해 간다면, 금세 실습에 적응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습 첫 날, 내가 마주한 카데바의 모습은 내 생각과도, 영상과도 많이 달랐다.

처음 비닐을 가르고 카데바를 꺼내던 순간부터, 사람의 시신임이 실감나지 않았다. 등 실습을 위해 카데바 아래로 손을 넣어 뒤집으며 '너무 차갑고 딱딱하다'고 생각했다. 피부를 벗겨내기 위해 등에 칼을 대는 것도 적응되지 않는 감촉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당황스러웠던 것은 안을 열고 나서였다.

등의 오른쪽 절반이 검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교과서와 영상으로 공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피가 고여 근육이 녹는 등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므로, 왼쪽 등 위주로 실습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실습이 진행되며 다른 조에서 쉽게 찾는 구조물들이 우리 조에서는 보이지 않을수록 누구에게인지 모를 억울함 같은 것이 조금씩 생겨났다.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단 카데바의 상태에서만 기인한 문제는 아닐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들과는 다르게, 앞에 놓인 카데바에는 제거해야 할 지방도 많았고 근육 크기도 훨씬 작았으며 혈관과 신경 등이 결합조직과 엉겨 좀처럼 구분해 내기 쉽지 않았다. 해부 기말고사 날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셈하며 한숨 쉬는 시간들이 길고 잦아졌다.

며칠 동안 관성의 힘으로 공부를 하다가, 기증자 분께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가 문득 떠올랐다. 과정을 얼만큼 자세히 알고 기증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실습 전에는 카데바가 너무 살아있는 사람 같을까 봐, 그래서 무서울까 봐 걱정했었는데, 카데바는 해부 실습이 진행될수록 사람의 형체에서 벗어나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피부를 벗기고 지방을 떼어내고 근육을 잘라내고 있는 대상이 모형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켜야만 했다.

아직 해부학 수업의 중간쯤에 던져져 있는 지금, 적당히만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딱 하나인 것 같다. 기꺼이 시신을 남겨 주신 기증자 분의 뜻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잘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들 말하는 해부지만, 뭔가 하나라도 더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몸을 직접 열어서 해부하며 공부할 수 있는 한 번뿐인 수업인 만큼, 최선을 다해 배우고 고민하고 토론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먼 미래(혹은 가까운 미래)에 한 명의 환자라도 더 고치고 살리는 것이 비단 해부학뿐 아니라 내가 졸업할 때까지 배울 모든 과목의 궁극적 목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소중한 가르침의 시간에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고민을 해 본다. 해부학적 지식뿐 아니라 함께하는 동기들과의 관계,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감당이 버거운 양을 외우는 요령 등 이 기간 동안 대단히 많은 측면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는 만큼 올바르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고, 부족하고 모자란 나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는 순간도 참 많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고민까지 포함한 이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또 미래에 좋은 의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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