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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6]

양기화
발행날짜: 2016-03-24 05:04:38

물을 떠다오, 자그레브(2)

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물을 떠다오, 자그레브(2)


우리 일행 이외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적막한 자그레브 대성당과 성모마리아상을 카메라에 담고 나니 더 할 일이 없어 카프톨언덕을 터덜터덜 내려와야 했다. 반 옐라치치광장은 주말에 열리는 난전이 끝나가는 시간이라서인지 손님도 없는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주인들의 손길만 부산하다. 돌볼 사람이 없어서인지 난전에 함께 아들을 건초더미에 앉히고 어르는 젊은 아빠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구 79만(2011년 기준)으로 크로아티아 최대도시인 자그레브는 메드베드니차(Medvednica)산 남쪽에 있는 그라데츠(Gradec)언덕과 카프톨(Kaptol)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진 도시이다. 반 옐라치치광장은 자그레브의 배꼽이라고 한다는데 당연히 자그레브의 중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반 옐라치치광장은 17세기 무렵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하미차(Harmica)라고 불렀다. 광장 주변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것도 있다.

전이 열린 반 옐라치치광장, 왼편으로 만두세바츠샘이 있다(좌위), 반 옐라치치광장역에 모이는 전차들(좌아래), 반 옐라치치 기마상(우)
1848년부터 광장은 지금의 반 옐라치치광장(Ban Jelačić Square)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속국이던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주도하고, 헝가리왕국의 침략을 막아낸 크로아티아민족의 영웅 반 요시프 옐라치치(Ban Josip Jelačić)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반(Ban)은 백작 정도의 귀족칭호라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자그레브 대성당 앞에 있는 '성모마리아와 네 천사의 분수'를 제작한 오스트리아 조각가 안톤 도미니크 리터 폰 페른코른이 1866년에 제작한 요시프 옐라치치의 기마상이 서있다. 광장 앞 도로를 달리는 전차는 1910년 개통하여 마차를 대신한 대중교통으로 사랑받아왔다.(1)

반옐라치치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인적이 거의 끊어진 듯하지만, 그래도 광장 앞 전차 정류장에는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부산하다. 마침 전차가 들어오는데 보니까 한꺼번에 세 대가 들이 닥치는 등 트램라인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거 같다.

사방을 가늠하기도 힘든 캄캄한 밤중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떨구어진 탓도 있었던 것 같고, 마침 주말이라서 난전이 펼쳐진 탓에 스치듯 지나쳤는데, 광장의 동쪽 편에는 색다른 모습의 분수가 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 있는 분수처럼 흔히 지상으로 솟아있는 좌대 위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뿜어져 오르는 모습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옐라치치광장에 있는 분수는 땅을 오목하게 파고 그 안에 만든 수조의 한 가운데 냄비에서 물이 끓듯 조그만 물줄기가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것이다. 바로 자그레브라는 지명이 유래하게 된 만두세바츠(mandusevac)샘이다.

자그레브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이준명작가는 먼 옛날 전투에서 돌아온 어느 장군이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몹시 목이 말랐기 때문에 만다(Manda)라는 이름의 처자를 불러 '사랑스러운 만다야, 자그라비(Zagrabi)!'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그라비는 '물을 뜨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후로 이곳을 자그레브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2)

그런데 '크로아티아 좋아하기(LikeCroatia)'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있는 유명한 크로아티아의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자그레브의 전설과는 차이가 큰 것 같다.

11세기 초에 한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편력기사가 되어 큰 활약을 했는데, 어느 날 베어마운틴(Bear Mountain) 인근의 깊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지만 작은 연못이나 개울도 만날 수가 없었다. 더러운 먼지 속에 하릴 없이 앉아 비라도 내리기를 바라고 있는젊은이 앞에 홀연 아름다운 처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젊은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을 가져다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을 했지만, 그녀 역시 물을 가져다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사가 앉아있는 곳, 즉 다리 아래의 먼지구덩이를 가리키며 'Zagrebite!'라고 외쳤다. 우리말로 옮기면 '거기를 파보라(Scrach it!)는 주문이었다.

젊은 기사는 그녀 말대로 땅을 팠고 이내 물이 용솟음쳐 올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젊은 기사는 그녀더러 혹시 요정이냐 물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난한 고아이고 이름은 만두사(Mandusa)라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이 발견한 샘을 만두세바츠(mandusevac)샘이라고 부르고 그녀에게 청혼하면서 이곳에 커다란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승낙하자 햇빛이 두사람을 감싸면서 미래에 이곳에 들어설 도시의 정경을 보여주었다는 전설이다.

따라서 자그레브는 사전적으로 '긁어서 파낸 장소'를 뜻하게 된 것이다. 이 샘의 물을 마시면 이곳을 결코 잊지 않게 된다고 전해온다.(3) 마치 땅을 파낸 것처럼 오목하게 내려앉은 장소에 만들어진 샘의 모습을 보면 뒷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광장주변을 기웃거리다 보니 유독 넥타이가 눈에 띈다. 그리고 보니 넥타이가 이곳 크로아티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넥타이의 원형이라 할 크라바트(Kravata)를 사용한 사람은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유명한 크로아티아 시인 이반 군둘리치(Ivan Gundulic, 1589-1638)이다.

그가 크라바트를 매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1622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시인은 태양왕 루이14세가 태어나던 해에 사망했다. 17세기 무렵 크로아티아 출신 용병들이 유럽 왕실 부대에서 활약을 해왔고, 루이13세 시절 프랑스 기병은 거의 크로아티아 용병으로 채워질 정도여서 1664년부터 1789년 사이에는 '로열 크라바트(Royal Cravate)라고 불렀다고 한다.

크로아티아 출신 군인들이 크라바트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맨 크라바트가 멋있어 보였던지 귀족들이나 왕실사람들도 따라하게 되었고,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넥타이가 되었던 것이다.(4)

성 마르코 성당(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함)
자유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데다가 자그레브 시내의 지도를 사전에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던 성 마르코 성당을 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반 옐라치치광장의 서쪽 끝에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성벽 아래 있는 스톤게이트를 지나 따라가다 보면 있다는데… 이 글을 쓰면서 아내에게 위치를 확인시켰는데 결국 '자그레브는 보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언젠가는 다시 가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 마르코 성당은 13세기에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창문을 달았다. 자그레브 대성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담한 크기가 더 마음에 드는 이 성당의 백미는 정교한 무늬의 휘장이 그려진 지붕타일 장식일 것이다.(5)

19세기에 만들어진 지붕의 휘장 가운데 왼쪽은 당시 주변 강국의 억압으로 분리돼 있던 달마티아, 슬라보니아, 크로아티아 지역을, 오른편의 휘장은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네 지역의 통합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미진한 무엇이 남아있는 것 같아 미적거리면서 광장을 떠나는데 광장 구석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연령대가 다양한 일군의 여성들이 검은 색 고깔모자를 쓰고 구석에 모여 뭔가 속닥거리는 품이 일을 낼 것 같다. 마녀들이 오늘밤 무언가 일을 벌이는 모양이다. 지켜보고 있는데 이윽고 의논을 마친 듯 바람처럼 광장으로 진입한다.

생각 같아서는 뒤쫓아서 무슨 일을 벌이나 보고 싶었지만,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녀들은 무슨 짓을 했을까? 혹시 체포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중세도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접었다.

마녀들과 작별하고 버스로 돌아와 탑승했다. 버스는 20여분 뒤에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꼬마아이들이 로비를 뛰어다니고 어디선가 낭자한 음악소리가 로비까지 흘러나온다. 소리를 따라 열린 문으로 훔쳐보니 몇몇 쌍이 춤을 추고 있다. 결혼식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입구에 걸려 있는 안내문을 보니 8-9명이 앉은 테이블이 무려23개이고 좌석의 주인이름이 적혀있다. 초대받은 손님만 입장이 가능한 것 같아 공연히 불청객이 되고픈 생각이 없어졌다. 행복한 한 쌍 덕분에 우리는 한참 만에서야 구석방으로 안내되어 부실한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참고자료

(1) Wikipedia. Ban Jelačić Square.
(2) 이준명. 어느 멋진 일주일 : 크로아티아 29쪽, 봄엔, 2012년
(3) LikeCroatia. Famous Croatian myths and legends.
(4) CROATIA-Overview of History, Culture, and Science. Cravat, die Krawatte.
(5) Wikipedia. St. Mark's Church, Zag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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