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비밀번호 변경안내 주기적인 비밀번호 변경으로 개인정보를 지켜주세요.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3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 비밀번호는 마이페이지에서도 변경 가능합니다.
30일간 보이지 않기
  • 오피니언
  • 젊은의사칼럼

의예과 학생의 조금 특별한 연수기②

이영민
발행날짜: 2016-02-25 12:04:18

의대생뉴스 2기 필진 한림의대 2학년 이영민

뉴욕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 그날은 안개가 끼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불확실성이 투영된 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지만, 여하튼 저녁에 착륙하던 비행기에서 바라본 뉴욕 공항 주변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엄청난 인파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곳은 미국, 9.11 테러 이후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진 탓에 그만큼 입국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배가 되었다.

특히 미국은 입국심사장에서 유도질문을 통해 입국여부를 가린다는 정보를 들었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터. 그런 질문들에 답하고 지렁이가 움직이는 속도처럼 느릿느릿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늘 내로 입국장을 빠져나가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내 입국 심사가 끝난 시간은 자정을 지난 시간이었다. 그러나 미국 J1 학생비자를 발급받았던 덕일까? 정작 여러 가지를 물어볼 걸로 생각되었던 내 차례에서는 별다른 질문 없이 입국 허가를 내주었다. 아무래도 배우러 오는 학생에게는 좀 더 관대한가 보다.

공항을 빠져나가니 엄청나게 많은 흑인 택시 기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연신 "Mister, where are you going?"이라고 하며 달라붙었다. 입국심사장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건장한 흑인들의 약간은 위협적인 말투의 흥정으로 인해 잠시 빠져있던 긴장이 온 몸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곳 안에서 난 한국의 의과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호기로운 학생이 아니라 단지 낯선 땅에 갓 도착한, 캐리어와 짐을 잔뜩 짊어진 한 동양인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왠지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조금은 자연스럽게 일행을 기다리는 척하다가 얼핏 보이는 Airport Train 표시를 보고 “I am going to take the train."을 외치며 황급히 그곳으로 쫓기다시피 하며 빠져나왔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Airport Train을 따라 가보니 브루클린 외곽 지역 Jamaica역까지 가는 열차와 공항 터미널을 순환하는 무료 모노레일이 함께 있었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버린 시간에 도착하는 첫날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내를 나갔다간 몽땅 다 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터미널을 순환하는 모노레일 안에서 다음 날 일정을 짜는 데 주력하자 마음먹고 그 열차에 앉아서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각에 골몰해 있던 사이 시간은 점점 지나 새벽 두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씩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했고 약간은 배고픔과 졸음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번엔 동이 틀 때까지 각 공항 터미널을 관광해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무언가 사먹거나 누워 있을 만한 최적의 장소가 있길 기대하며. 한참을 그렇게 공항 안을 방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시간에 유일하게 열려있던 도넛 가게에서 물품마다 약 10% 정도의 주별 세금이 붙는 걸 모르고 왜 가격표에 표기된 가격보다 더 비싸게 값을 받는지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앳된 청년이 별도의 세금이 붙어서 그렇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미국에서 인연이 닿은 사람은 중국인 유학생인 S였다.

뉴욕 소재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S는 졸업 학년을 맞이하여 중국에 있는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뵈러 가려다가 비행기를 놓쳐 3일간 공항 안에서 반강제로 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날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던 찰나에 웬 짐을 많이 든 동양인 한명이 도넛가게 앞에서 한참동안을 서 있는 걸 보고 처음 자기가 미국 도착했을 당시가 떠올라서 도와주려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가 비슷하여 말도 잘 통했고, 결국 동이 틀 때 까지 공항에서 새로 만난 친구랑 약간은 서툰 영어로 대화하느라 밤을 새버리고 말았다.

대화는 미국에 대한 인상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토론까지, 약간은 예민할 수도 있는 한중일 관계까지도 (사실 아직도 이런 내용을 그 당시에 어떻게 영어로 토론했었는지 의아하긴 하지만) 서로 솔직하게 대화를 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특히 S가 중국에서 배웠을 때랑 미국에서 배웠을 때랑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필자 또한 미국에서 의과대학과는 다른 새로운 배움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게 되었던 계기가 바로 이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불과 하루 사이, 새로운 인연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낯선 공항 안에서 만들어진 소중한 추억 한 뭉치, 그 추억을 안고 공항 밖으로 뜨는 해를 보면서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망과 함께 내 손은 이제 뉴욕의 심장 맨해튼을 향한 끈을 묶고 있었다. 밖에는 더 이상 안개는 없었다.

댓글
새로고침
  • 최신순
  • 추천순
댓글운영규칙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
더보기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메디칼타임즈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