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의 일상 뒤편에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만큼이나 무거운 과제가 숨어 있다. 바로 의료폐기물이다. 수술실과 병동에서 사용된 장갑, 가운, 주사기, 거즈는 하루 수백 톤에 달하며 대부분 감염성 위험을 지닌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료폐기물은 2019년 하루 140톤에서 최근 200톤을 넘어섰다. 이미 소각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일부 지역에서는 창고에 수개월간 방치되거나 불법 매립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2022년에는 병원 인근 창고에 의료폐기물이 쌓여 주민 불안을 키운 사건도 있었다.
의료폐기물은 일반 쓰레기와 다르다. 혈액이나 체액에 노출된 물품은 감염 위험을 지니고,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이라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과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을 내뿜는다. 소각 후 남는 잔여물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가 동시에 지구를 병들게 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분명한 결론에 도달한다. 병원이 이제는 환자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환경(Environment) 측면에서 불필요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사용 가능한 의료용품을 도입해야 한다. 사회(Social) 측면에서는 병원이 환경 문제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환자와 지역 사회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는 투명하고 체계적인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국제 사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WHO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의료폐기물 관리 지침을 발표하며 각국 정부와 병원에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재사용 가능한 의료용품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미국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은 재사용 가능한 의료기기를 도입하고, 소각 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을 줄이는 첨단 필터링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제 한국 병원들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의료폐기물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재사용 의료용품 도입, 분리배출 시스템 강화, 친환경 멸균 및 재활용 기술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병원이 지켜야 할 새로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믿는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듯, 지구의 건강도 함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병원 경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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