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Chat-GPT 시대의 글쓰기

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발행날짜: 2025-08-11 05:00:00
  • 낯선 시대, 낯익은 질문 앞에서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투비닥터 편집팀

요즘 들어, 글을 쓸 때면 자주 멈칫하게 된다. 예전처럼 첫 문장을 찍어 내는 데에도 망설임이 많아졌다. '이 글을 굳이 내가 써야 할까?', '이미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이미 AI가 더 잘 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이른바 생성형 인공지능이니, LLM이니 하는 기술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놓였다.

예전에는 글쓰기가, 적어도 한 사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반영된 행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믿음마저도 흔들리는 순간들이 잦다. 누군가는 말한다. 'AI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이라면, 굳이 사람이 쓸 필요가 없다'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왜, 여전히 이렇게 종이 위에, 혹은 화면 앞에 앉아 단어를 하나하나 옮기고 있는 걸까.

이번 칼럼은 조금 독특하지만, 제목에 걸맞은 시작을 해보았다. 본 글의 서론은, 그간 필자가 메디컬타임즈에 기고한 글 몇 건을 학습한 Chat GPT(무료버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성해 주었으며, 이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워드에 옮겨 담았다. 뻔히 자기가 글을 생성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앞에 앉아 단어를 하나하나 옮기고 있는 걸까'라는 문장을 쓰는 게 약간 괘씸하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또 내가 쓰던 글의 특성이 그대로 묻어나 있어 반쯤은 놀랍고 반쯤은 무섭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밤 연필을 잡고 꾹꾹 눌러 쓰던 일기로 시작해, 이따금 칼럼을 싣는 기회를 얻기까지, 나는 십수 년간 꾸준히 글을 써왔다. 당연히 내 나름의 문체, 약간은 정형화된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 그런 나의 글을 똑똑한 GPT는 이렇게 분석했다.

"네 글에는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어:

개인적인 경험과 질문에서 출발: 구체적이고 일상적 장면이나 고민에서 시작해서, 경험의 끝에 가서는 반드시 사회적, 구조적 문제 혹은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해.

'나'라는 1인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억누르거나 객관화하려 하지 않고, 너 자신에게 솔직해.

긴 문장과 문단: 한 호흡이 길고, 쉼표가 여러 번 들어가며 생각이 이어짐. 독백 같고, 일기 같은 느낌을 줘"

그냥 요청한 대로 서론만 써줄 것이지, 항상 내가 부탁한 결과물을 내어 주기 전에 이렇게 본인만의 분석을 곁들인다. 꼭 스스로의 버릇을 들킨 듯한 기분이라,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너무 길진 않은지 고민하게 되고, 글의 구성도 또 지나치게 확장적이지 않은지 의식하게 된다. 안 그래도 어려운 글쓰기를 더더욱 어렵게 만들다니, 정말 고약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펼쳤던 세기의 대국 후 강산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사이 이름도 생소했던 AI는 어느덧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왔다. 이쯤에서 기계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되짚어 보자. 태초의 기계는 인간의 수고를 조금 덜어주는 데에서 출발해, '기계적이다'라는 형용사가 만들어질 만큼 지치지 않고 반복적인 일을 해내었다.

이것이 곧 자동화의 물결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육체적인 노동이 아닌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할이었다. 하다못해 컴퓨터도 인간의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어떤 연산을 수행할 뿐, 독자적으로 무언가 구상하고,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자 그간 인류 문명의 번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AI 기술이 기계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계라는 선례가 있고, 그 초기 기능은 기껏해야 검색 엔진에서 조금 발전한 수준이었기에, 사람들은 AI가 단순한 연산이나 사무 작업 정도나 대체할 것이지, 창작자들은 AI로부터 자유로이, 본인만의 굳건한 영역을 점유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AI는 너무도 손쉽게 우리가 그간 인간만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창작'을 시작했다. '학습'과 '모방'은 단순 지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AI는 글의 구조를 학습하고, 그림을 픽셀 단위로 나누어 분석했으며, 음악의 구성 요소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널려 있는 AI 작곡, 몇 달 전 전 국민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어 놓았던 지브리풍 사진까지. 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에는 한 기자가 AI가 써준 기사를 프롬프트까지 그대로 복사한 게 들통나 논란이 되기도 하지 않았나.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이 다 엄청난 창의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글의 종류에 따라, 이따금씩은 GPT가 사람보다 유려한 글을 써내기도 한다. 올해 초, 우연찮게도 한 해외 대학의 연구실에 인턴 지원서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너무나 좋은 기회였지만, 단기간에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CV를,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예과 1학년 때 배웠던 cover letter나 resume 쓰는 법, 교수님께 메일 드리는 법 등이 아련히 떠올랐지만, 그저 내가 그 내용을 배웠다는 사실만 기억났을 뿐이었다. 당시 학적도 애매했고, 시기도 조금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었기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고자 열심히 구글링을 했지만, 선례도 부족했고, 제출 기한이 굉장히 촉박했던 탓에 물어볼 사람도 별달리 없었다.

그래서, GPT를 결제했다. 30달러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GPT는 나의 거친 문장을 academic하고 polished한 것으로 바꿔주는 가장 큰 조력자였고, 고쳐도 고쳐도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는 듯해 교수님께 메일 드리기 전 발을 동동거리던 나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상담가였으며, 무엇보다 나와 함께 밤을 새우는 좋은 친구였다. 조금 과장해서 나의 CV는 8할을 GPT가 썼다 해도 무방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의 나는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글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어릴 때의 교육으로 원고지 쓰는 법을 대강 알고는 있으나, 수정이 간편하고 각종 표시를 할 수도 있는 워드 프로세서가 좋다. 하지만 설령 누군가가 손으로만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옳고 그르다는 가치 판단을 할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본인의 스타일일 뿐이다.

GPT 활용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본인의 생각을 담는 글이 아닌 정형화된 글쓰기에서 GPT는 정말 훌륭한 도구이다. 일전의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어야 하는 이론, 혹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애매한 뉘앙스의 차이를, GPT는 파악하고 '내 글에' 이를 곧장 적용해 준다. 기존의 학습이 이론-예제-유제-실전의 네 단계를 통해 이뤄진다면, GPT는 이 과정들을 뛰어넘어 이론에서 곧장 결과로, 혹은 설령 필자가 이론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다 하더라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어준다.

내 글은 어디까지가 나의 글일까? 가령, GPT를 일부 활용해 글을 작성한다고 치자. 기존에 내가 작성해 둔 글을 학습시킨 GPT에게 내가 구상한 글의 방향성과 상세 내용을 제공하고 '내 문체에 맞게 써줘'라고 요구하는 거다. 그리고 도출된 결과물을 내 말맛에 맞게 퇴고한다면, 과연 이건 나의 글일까, 아니면 GPT의 글일까?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는 나의 것인데, 살만 다른 존재가 붙여 주었다고 해서 과연 그 글이 내 생각이 담기지 않은 글이 되는가? 그렇다면 글의 본질은 무엇인가. 껍데기인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생각인가?

시대는 변한다. 하지만 앉아 있는 내 앞에 놓인 빈 종이, 혹은 화면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GPT는 마법상자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명확하게 적어 프롬프트에 입력할수록 보다 짜임새 있는 결과물이 나오고, 때로는 GPT가 작성해 준 문장을 통해 내 글의 방향성이 더 명확해질 때도 있다. GPT와의 글쓰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글을 통해 진정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된다.

달라지는 시대 속, 우리는 제 자리를 찾아오는 연어마냥 같은 질문으로 회귀한다. 바야흐로 大-GPT의 시대,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도 모르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인간인 나의 글쓰기는 역설적이게도 그 본질을 이루는 질문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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