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처장

고등학교 시절 '주입식 교육'은 학생 사회에서 늘 논쟁거리였다. 교육 관련 서적을 찾아 읽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미국의 존 듀이,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소통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전공의 수련 환경을 둘러싼 여러 단체와 주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이 인물이 떠올랐다.
우리의 수련(교육) 환경은 작게는 해당 병원의 해당 과 차원에서, 크게는 전공의특별법 제10조에 따라 설치된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평가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전공의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내용에 무언가를 추가할 수도, 뺄 수도, 수정할 수도 없었다"며 실질적 의사 결정권이 없었다고 말한다. 한편, 교수자 단체에서는 개별 사안에 대한 전공의 의견이 명료히 전달되지 않았을뿐더러, 다수결로 의결하는 구조가 아니기에 전공의들이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구조는 열려있으나, 실질적 작동은 안 되는 셈이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동안 교수자들은 해당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어떠한 방향의 교육이 최선인지에 대한 지식에 확신이 있고, 피교육자는 팔로워로서 그것을 따라와야 한다는 오랜 사고의 전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피교육자들은 명시된 수련 기간을 버텨낸다는 마음으로 '전문의가 되는 과정'이 아닌 '전문의가 되는 결과'에만 집중하면서, 보드를 편하게 딸 수 있는 편의성과 전문의 전단계로서의 전문성 사이에서 방향을 못 정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전문의 취득의 편의성을 담보하면서, 실용성/전문성을 고루 갖춘 교육 체계의 양립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교수자는 '우리가 정한 길로 따라와라'는 관성을, 전공의는 '보드만 따면 끝이다'는 수동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존 듀이는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지시를 따르는 존재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경험 자체가 단순한 교육 효과를 넘어서 민주적인 집단과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보았다. 교수자들도 현시대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전향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전공의 내부에서도 안에서의 모순을 직시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는 주체적 작업에 나서야 한다.
획기적인 수련 시간 단축을 앞둔 상황에서, 총 수련 기간은 어떻게 되어야하는가. 술기 위주의 교육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근로자로서의 성격이 옅어지는 상황에서 병원이 전공의 임금을 줄이고 하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전공의들은 정부에 어떤 지원을 요구해야 하는가.
사태의 끝에서 전공의들에게 돌아온 공은 그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
지난 의정갈등 동안 붉어졌던 많은 수련 상의 문제와 전담간호사의 등장 등 악재와 호재가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수자와 피교육자 간의 소통이 더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듀이와 이 시대 전공의들의 공통점은 '경험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의미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경험이 가진 질에 달려 있다'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수의 관심과 참여에 대한 열정 없이는 무의미하다. 교수자는 피교육자가 이러한 요구에 대해 능동적 참여자로서 역할 하는 것을 반겨주고, 피교육자들은 그러한 참여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하나의 끝과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는 의료계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