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해지지 않기

고신의대 2학년 김민지
발행날짜: 2025-07-07 05:00:00
  • 고신대학교 예과 2학년 김민지

지난 한 해, 나는 고향 친구들과 자주 교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료 대란으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라 약속을 잡지 않았고, 이후에는 금방 해결되리라 여겨 만남을 미뤘고, 점차 상황이 심각해지자 분노와 우울함에 얼룩져 친구들을 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평소라면 방학이었을 시기였다. 8년 지기 친구들에게 대뜸 연락이 왔다.
"다들 종강했지? 이번에도 약속 안 잡으면 우리 올해 안에 못 만나. 이번 주에 글램핑 가자"

회피하고 싶었다. 여전히 나의 상황은 해결된 것이 없었고,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온 그들이 부러웠다. 이런 자책과 무력함, 질투가 범벅된 채로 친구들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여러 핑계를 대며 둘러둘러 거절해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 주에 글램핑장으로 떠났다.

오랜만의 단체 여행이었다. 컨셉도 알차게 정했다. 이름하여 '황조지 컨셉 여행'. 지진희 배우가 황정민 배우, 조승우 배우와 우정 여행을 갔던 사진이 한때 화제가 된 적 있다. 자유롭고 꾸밈없는 모습과 엉뚱한 코멘트… 그 날것 그대로의 분위기가 오히려 순수하고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그 스타일 그대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예쁘게 꾸미고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고기와 술을 왕창 사서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즐겁게 먹고 마시기로 했다. 유치한 게임도 하고 밤늦게까지 수다도 떨며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떠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즐거워 보이는 친구들과 달리 나 혼자만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래서는 내가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도 점차 섞여갔다.

우스운 농담을 하고, 웃긴 춤도 춰보고, 별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낄낄대며 웃었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는 꼭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한참 웃다 보니 막힌 혈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 썰렁한 개그 하니까 애들 반응 웃기다'
'그래. 나 고등학교 때는 이 반응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이랬는데'

서서히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았고, 그제야 어깨에 힘이 툭 풀렸다. 이렇게 웃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나는 너무 매 순간 비장했다.

'사람 김민지'가 아니라 '의대생 김민지'라는 자아에만 몰입한 채, 일상을 내내 비장하고 심각하게 살았다. 마치 모든 힘을 투쟁에만 쏟아야 그 시간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다그쳐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항상 그렇게 굳어 있을 필요는 없었다.
고통만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긴장이 풀리자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별다른 말 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준 그들이, 그저 함께 웃어준 그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얘들아 고마워. 나 사실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노니까 좀 낫다" 조심스레 털어놓자 친구들은 피식 웃고는 잔을 내밀었다.

"그럴 줄 알았어. 원래 그런 건 말이지, 이렇게 훌훌- 크게 크게 웃으면서 터는 거야" 다시 한번 잔이 부딪혔고 시원한 탄산감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호로록, 훌훌.

자, 당신도 어깨에 힘을 좀 빼보자.

주변도 한번 돌아보고, 일부러 썰렁한 개그를 치며 하루쯤은 우스꽝스럽게 살아보자.

모든 순간에 억지로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일상에서 웃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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