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유우선
투비닥터 편집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 있다.
며칠 전 내가 편집팀으로 있는 의대생 단체 '투비닥터' 인터뷰 촬영 현장에 나갔다가 정점을 찍은 생각이다. 7월에 발간될 투비닥터 매거진에 들어갈 중요한 인터뷰였고, 인터뷰이께서 영상 촬영을 허락해 주셔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편집팀과 온갖 카메라 장비를 진 카메라팀까지 선릉역에 모였다.
결코 쉽지 않은 하루였다. 영상 촬영 장비는 이동용 캐리어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많았고, 인터뷰 현장 세팅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하필이면 날씨도 엉망이었다. 인터뷰 시작쯤에는 찌는 듯이 덥다가, 끝나고 철수할 때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인터뷰에 대답해야 하는 나도 긴장과 낯섦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감히 힘들다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카메라 팀장 선배(영상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같은 의대 휴학생 신분인) 때문이었다. 까만 티가 땀인지 비인지 모를 것에 흠뻑 젖은 채로 그는 분주하게 장비를 세팅하고 짐을 옮기며 돌아다녔다.
선배는 인터뷰 이틀 전부터 외부 촬영 전문가를 섭외하고, 장비를 대여하느라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실제로 촬영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진이 다 빠져 평소와 다르게 말수도 없어진 그를 보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요한 콘텐츠라고는 하나, 실은 독자도 많지 않은 우리 매거진과 유튜브 채널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그가 신기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과했나 싶었는지, 밥을 먹다가 그가 중얼거렸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별로 보태 줄 말이 없어서, 나는 그냥 늘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뭐… 좋아하니까 하는 거죠"
더 우스운 것은, 그 말에 그가 그저 푸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대체 왜? - 좋아하니까.
그래, 나는 이 '좋아하는' 마음의 족적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참 알 수 없다 생각하며 족적을 오래 지켜보았다. 가령 좋은 공대에 갈 수 있는 내신 등급을 충분히 잘 쌓아 놓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옷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갑자기 의상학과로 진로를 튼 소꿉친구. 혹은 이미 학사까지 따 놓고 취업을 코앞에 두었는데 새롭게 배우의 길을 시작한 옛 지인. 아주 가깝게는 본업과는 영 동떨어진 일인 회화 전시를 주관하느라 몇 달을 고생하는 엄마. 힘들지 않냐고 묻는 내 질문에 그들은 늘 똑같이 말했다. "이게 너무 좋아“
좋다 - 라. 그 마음이 그렇게나 유의미한가? 나는 이에 대해 꽤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산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마음을 눌러 둔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큰 지장이 생기는가? 역시나 그렇지 않다. 외려,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자주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그 거래의 합리성을 가장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었다.
글 쓰는 것은 언제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쓸 때도, 중고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갈 때도, 아니면 그냥 공부하기 싫으면 낙서나 메모를 아무렇게 끄적일 때마저도 항상 즐겁게 펜을 휘갈겼다.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 때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쓰거나 필사를 했다. 어쩌면 평생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겠어. 자주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글을 쓰는 진로에 몰두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세상을 많이 관찰하고 난 후에 나는 펜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미련 없이 내려놓은 '좋아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막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롭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냉정하게 스스로를 진단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절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닌 나. 더군다나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에 쓰일 리 없는 내 어쭙잖은 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과 고작 좋아할 뿐인 글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일과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은 등가교환이 불가함을 확신했다. 그렇게 딱 나누어 떨어지는 계산을 끝내고는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건 그저 좋아하고 끝인 거지. 거기 뭘 내걸고 좇는 건 기묘해.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기묘하다 치부한 내 오만은 한순간에 나를 벼락처럼 뒤흔들었다.
입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펜을 다시 슬쩍 들었을 때부터 진동은 시작되었다. 힘주어 쥐었던 전과는 달리 아주 가볍게 든 펜이었다. 혼자 독후감을 쓰거나, 종종은 격한 감정을 담은 일기를 쓰거나, 자문자답하며 논설문을 쓰거나.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전처럼 즐거웠다. 그러나 이내 다른 사람들도 내 글 읽어봤으면 좋겠는데,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생겼다. 그 단순한 욕망에 이끌려 투비닥터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마음'의 본격적인 반격은 그때부터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몇십만 자를 써 내려갔다. 매 글이 쉽지 않았다. 세상에 보이는 글을 쓰는 일은 만만치 않으니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소모가 많은 일이었다. 다만, 내내 즐겁기 그지없었다. 책 <코드블루>에 의료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칼럼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얼떨떨함은 매큼하게 나를 자극했다.
투비닥터 매거진에 수록된 내 에세이를 형편없다고 생각했는데, 참 아름다운 글이라고 익명의 독자에게 DM을 받은 날은 하루 종일 그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메디컬 타임즈에 기고하는 글의 퀄리티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며칠 밤 머리를 싸매고 글을 뜯어고친 날들도 다크서클은 한 바가지였으나 완성된 글에 행복했다.
그리고 이번 상반기 내내 투비닥터 매거진 10호를 만드는 데에 유례없는 몰입을 하면서 나는 온전히 글을 쓰는 일에 빠졌다. 기사 퀄리티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레퍼런스가 될 시중 매거진을 사고, 며칠씩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편집 회의를 거듭하며 더 좋은 기획 기사를 위해 노력하고, 도서관에 주저앉아 방대한 자료를 뒤졌다.
모든 일은 굳이 싶을 정도로 열과 성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이 매거진을 사람들에게 읽게 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리라는 어설픈 사명감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꼭 세상을 좋게 만들지는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에 그 사명감이 무색하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더라도 지금의 에너지 소모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밤을 새우면서, 이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면서, 대체 왜 나는 이러고 있나. 힘에 부치면서도 노트북을 부여잡을 때, 매번 불퉁스럽게 자문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 끝에 비로소 완성된 답은 나를 완전히 함락시켰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그저 지금 즐거우니까. 쓰는 것이 좋고 쓰인 것을 편집하는 것이 좋고 쓰기 위해 구성을 만드는 것이 좋다. 좋으니 끝이다.
내가 스스로 던진 질문들이, 등가교환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꺼이 글을 좇은 나의 감각들이, 전에는 알 수 없다 생각했던 타인들의 기묘한 족적과 같은 궤를 하고 나를 휘감았다. 체념한 척 기쁘게 패배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도 그 기묘한 세계에 던져졌구나.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기묘한 마음이 있다. 얼마나 기묘하냐면,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수 없는 일들에 굳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게 만드는 마음이다. 너무 기묘해서, 시답잖은 경험에도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부여해 합리적 계산을 불가하게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를 끌고 가,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 것만 같은 즐겁고 멋진 세계를 보여주는 마음이다.
올여름 나는 파도 타듯 그 마음을 타고 있다. 휴학과 복학이 맞물리는 그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는 7월,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분주히 손을 놀려야 한다. 쌓인 일감들은 꼭 인터뷰 날 카메라 팀장 선배의 수많은 장비처럼 덩치도, 갯수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들을 들쳐 업고 이 여름의 파도를 즐겁게 타보려 한다. 비가 오든, 더위에 녹을 것 같든, 얼마든지 즐거울 자신이 있다. 좋아하니까!
펜을 들자, 기묘하고 반짝이는 마음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