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제팀 김승직 기자

의정 대화가 다시 물꼬를 트는 분위기다.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충분히 하며 적절하게 필요한 영역에서 타협해 나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역시 같은 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의료계와 정부의 정상적인 소통 창구가 열리게 된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의료 현장은 땜질식 처방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고, 중증·응급을 다루는 분야는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는 우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문의 양성 과정 정상화가 우선인 만큼, 의대생이 돌아올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
의료계와 정부의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잘못된 대화로 사라진 신뢰가 이번 사태의 기폭제가 됐다. 그동안 정부·정치권은 수차례 "의료계와 소통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실제론 협의가 아닌 통보에 가까웠으며, 오히려 형식적으로 그친 대화가 정책 추진의 명분이 된다는 게 의료계 중론이다.
의료계 태도에도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합리적인 대안 없이 정책을 비판하기만 하며, 이를 막기 위해 과격한 행동도 불사하지 않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게 정부·정치권의 인식이다.
이제 지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단순한 회동이나 간담회를 넘어서는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미국 학자 제임스 피쉬킨은 "참여자의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 올 때, 비로소 공론화의 가치가 증명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이 대화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대화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책임 의식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어떤 합의도 실현되지 않는다. 생명과 직결된 의료 영역에서의 불신은 특히 뼈아프다. 이해당사자 간 의사결정과 권한 공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다시 불신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간 정부와 정치권은 의료계의 우려를 '집단 이기주의'로 단정하고, 정책의 당위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책 결정에 앞서 신뢰를 구축하려는 태도가 없다면, 어떤 논의도 결국 공허한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공청회', '간담회', '협의체'라는 단어들이 수없이 등장해도, 제대로 된 구조적 대화는 실현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논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절차와 구조로 이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인가이다.
정부는 의료계를 '설득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결정할 주체'로 바라봐야 하며, 의료계 역시 단순한 반대를 넘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대화란 결국 서로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대화는 '형식'이 아니라 '태도'다. 오랜 갈등의 피로 속에서, 말만 오가는 소통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신뢰를 위한 첫걸음은 책임 있는 태도와 지속 가능한 구조다. 이제 정치권과 의료계 모두,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자리에 나와야 한다. 이제는 설득보다 이해를 우선하는 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