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응급수술용 혈액 구하느라 피마른다"

발행날짜: 2011-02-07 06:50:43
  • 적합성검사 못해 발 동동…일부과 수술기피 현상까지

중소 병·의원을 중심으로 혈액 수급 곤란을 이유로 수술을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응급상황에서 혈액 수급은 곧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혈액 수급의 실태를 점검해 보고 문제 진단과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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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혈액이 부족하다" 응급환자 싣고 병원으로 뛴다
<하> 혈액 수급은 시스템의 문제…제도 개선 필요
#1. 2005년 대구의 B 정형외과는 수술 도중 피가 부족해 혈액원에 혈액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혈액 적합성 검사를 해주지 않아 혈액을 구하기까지 무려 2시간이 소요됐다. 혈액원의 적합성 검사 거부 때문에 환자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2. 2011년 경남 안동의 A산부인과는 분만 중 응급상황에 빠진 환자를 두고 '피마르는' 경험을 했다. 대형병원이 혈액 적합검사를 해주지 않아 환자 피를 들고 영주까지 가서 검사를 받아온 것이다. A산부인과는 간신히 수술을 마쳤지만 안도감보다는 분만을 이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소규모 의료기관의 혈액 수급난이 심각하다. 2005년 벌어진 응급상황에서의 혈액 확보 문제는 2011년에도 반복됐다. 개원가에서의 혈액 확보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란 뜻이다.

특히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의원급 의료기관 중 응급수술을 요하는 진료과에서는 혈액 수급 문제로 진료 과목의 존폐마저 고민하고 있다.

수술 중 혈액 부족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수술에 들어갈 때마다 응급상황을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응급 상황에 쓸 혈액을 구할 수가 없다"

정형외과, 산부인과에서는 혈액 수급의 어려움보다는 주로 응급상황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혈액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즉 혈액 확보가 어렵다는 게 아니라 응급 상황에서 필요한 혈액을 구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혈액 적합성 검사(Cross Matching)를 혈액원이나 대형병원에서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저수가와 인력 확보, 비용 소요 등의 이유로 대형병원에서도 혈액 적합성 검사를 안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의원급에서는 응급상황 시 환자의 피를 들고 혈액 적합성 검사가 가능한 곳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지만 검사를 해주는 곳을 찾기란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 만큼 어렵다는 것이 개원가의 반응이다.

게다가 혈액원도 적합성 검사의 의무가 없는 데다 혈액 사고시 책임이 귀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합성 검사를 피하는 실정이다.

혈액원, 책임 귀속 우려로 '몸 사리기'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혈액 적합성 검사 보험료는 현재 2870원으로 저 수가인 데다가 혈액 사고에 대한 부담도 커서 대형병원이 이를 안하려고 한다"고 크로스 매칭을 해주는 병원이 줄어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형병원이라고 해도 터무니 없이 낮은 검사비로는 혈액원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합성 검사를 시행한 병원이 수혈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이중고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법제이사는 이어 "혈액원도 혈액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적합성 검사를 안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부터 최근 2010년까지 14건의 혈액 사고 관련 대법원의 판례는 주로 혈액원의 업무상과실치상·혈액관리법위반 등 과실을 인정하는 판례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적합성 검사의 의무 조항이 없는 혈액원으로서는 혈액 사고에 대한 우려로 적합성 검사를 거부하는 곳이 상당수다.

소규모 병원이나 의원급은 응급 상황 발생시 적합성 검사를 해주는 곳을 찾아 '피마르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적합성 검사 거부, 분만 기피 현상 부추겨

경남 안동의 A산부인과는 최근 적합성 검사로 고생을 했다.

대형병원이 혈액 적합검사를 해주지 않아 환자 피를 들고 영주까지 가서 검사를 받아온 것. 일분일초가 아까운 응급상황에서 지체된 시간만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자칫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전주의 김 모 원장도 응급상황에서 적합성 검사 문제로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다.

적합성 검사로 시간을 지체하자 산모의 생명이 위태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일단 환자를 살리고 보자는 생각에 적합성 검사 없이 수혈을 했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난다.

김 원장은 "혈액 사고 발생시 혈액원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혈액원은 적합성 검사에 방어적 대응을 하기 일쑤"라면서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도 적합성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크로스 매칭 없이 수혈해서 환자가 살아났으니 망정이지 만일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 했냐"면서 "의원급에서는 응급 상황에서의 혈액 수급 때문에 분만과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형외과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의 한 정형외과 원장은 "임상병리사를 고용할 수 없는 의원급은 혈액원이나 대형병원에 적합성 검사를 의뢰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거의 안해주고 있어 곤란하다"면서 "외부 임상병리 해주는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늘고 있어 수술을 줄일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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