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실패될 것"…지방 의료원장이 본 지역의사제 민낯

발행날짜: 2026-02-25 17:52:50
  • 의료정책연구원, 지역의사제도 문제점 관련 의료정책포럼 개최
    "대만 지역 이탈률 84% 기록…의사 수 대신 정교한 제도 설계 필요"

해외의 유사한 제도 추진 사례에 비춰볼 때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의사제'가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거대한 실패가 될 겁니다."

정부의 '지역의사제' 추진과 관련해 지방 의료원장을 포함한 전문가들로부터 '예견된 실패'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 수를 늘리는 공급 정책에만 집중하고 의료 이용 수요 조정이나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사실상 부재해 지역의사제의 족쇄가 풀린 의사들이 다시 수도권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던 대만에서 84%의 이탈률을 기록하는 등 해외 역시 실패의 전철을 밟았다는 점에서 정교한 제도 설계가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의료정책연구원은 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지역의사제도의 문제점 관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하고 제도 설계의 문제점 및 개선안을 공유했다.

먼저 김창수 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지역의사제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의료 체계의 왜곡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지역의사법은 의무 복무 불이행 시 '의사 면허 취소'라는 강력한 제재를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는 면허 취득 후 10년간 특정 지역과 기관 근무를 강제하는 것으로,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창수 의사협회 정책이사

실제로 정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무 복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위반할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강력한 이행 강제 수단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 김 정책이사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의 법안은 유독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며 "대만은 장학금 반환을 통해 의무를 면제하는 바이아웃(Buy-out) 제도를 운영하고, 일본은 전문의 자격 제한 등 간접적 제재를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한국은 경제적 해결책이 있음에도 면허 박탈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다"며 "이는 직업적 사형 선고를 내린다는 점에서 과잉 금지 원칙 위배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인력이 수련 환경이 부실한 지방 의료원에 배치될 경우, 임상 역량 강화의 기회를 잃고 '실력 부족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힐 우려도 제기됐다. 주민들이 강제 배치된 인력을 기피해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면 지역 의료의 질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대만의 공비의사 제도는 복무 종료 후 지역 이탈률이 84%에 달해 정책적 한계를 드러냈다. 쇠사슬로 묶어둔 인력은 의무가 끝나는 순간 가장 먼저 지역을 떠나게 돼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 구축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 이사는 단순한 인력 강제 배치가 아닌 의료전달체계의 근본적인 개편 선행을 중심으로 ▲의원과 병원 기능의 법적 분리 ▲필수의료 가치를 반영한 수가 현실화 ▲지방 의료원의 인프라 최첨단화 ▲지자체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 관리 체계 확립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유일 전남대병원 교수(대한의학회 정책이사)도 통해 단순한 인력 확충보다 의료 인력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주문했다.

그 핵심 요소로는 적절한 근무 환경과 의료기관 배치 시스템을 꼽았다.

현재 논의되는 중진료권 중심의 모집과 배치는 지역별 형평성 문제와 전문과목 적합성 불일치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 광역(대)진료권 단위의 배치 기준 개발 및 민간 의료기관이나 보건단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배치 기준 정립이 수반돼야 하고, 장기적인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보상과 인프라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

패널로 나선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은 지역의사제도에 대해 "거대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했다. 현장에서 지역 공공의료를 운영하고 있는 책임자의 시각에서,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나 의무복무 방식으로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최 원장은 우선 정책의 출발점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은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현재 설계대로라면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5~20년이 소요돼 의료 인프라가 그간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것.

최안나 강릉의료원 원장

또한 "지역과 수도권의 치료 성과가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지역의사제를 추진하는 것은 정책적 자기모순"이라고도 했다. 만약 지역 치료 사망률이 높다면 그 원인을 먼저 분석하고 인프라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지, 단순히 의사를 묶어두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취지다.

현장의 인력난 실태도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는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병원 내 타 전문의가 응급실 당직을 지원하고 싶어도 현행 규정상 진료·입원 체계와 충돌해 불가능하고, 인접 지역 공중보건의가 주말 당직을 서는 것도 행정구역 제한에 막혀 허용되지 않는 사례를 들었다. "규제 완화만으로도 당장 숨통을 틀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의 한계도 언급했다. 지역 의료원 의사 연봉이 크게 인상됐지만, 단순 보수만으로는 유인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부담, 경력 단절 우려, 교육·정주 환경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역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형사책임 완화, 세제 혜택 등 상징적·제도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지역의사제는 의무와 규제 중심 접근으로는 성공하기 어렵고, 수요 관리, 규제 개선, 인센티브 재설계, 정주 환경 개선 등 종합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며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해법을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정책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