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현재 원격진료 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급성기 질환자 초진에서의 안전성 문제와 비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에 있다. 특히 소아 발열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는 신체검사 없이 화면상 관찰만으로 중증 감염성 질환을 감별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 거버넌스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의료정책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임상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법안 발의과정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수차례의 공청회와 의견 조율과정이 거의 생략된 채 성급하게 추진된 결과, 현재와 같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원격진료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이나 중국 등의 해외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발상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로, 의료기관까지의 거리나 대기시간, 의료비 부담 등 모든 면에서 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광활한 영토의 국가들이나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원격진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국회의원들은 입법행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법 제정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 발생한 전문의약품 불법광고, 환자유인행위, 본인부담금 면제, 무자격자 조제, 건강보험 부당청구 등의 사례들은 모두 제도 시행 이후 나타난 예측 가능했던 부작용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책 설계 단계에서 전문가들의 우려가 제대로 반영되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국민 의견 수렴과정 역시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다. 과거 일방적 운영으로 비판받았던 공론화 위원회 방식을 답습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시민단체들의 참여로는 진정한 의견 수렴이 불가능하다. 의료정책에서는 임상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의료진과 학회의 의견이 핵심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 전문가 집단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비대면 진료의 본래 취지였던 감염 예방과 의료접근성 향상은 사라지고, 비만약과 탈모약 등의 상업적 처방으로 변질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디지털헬스케어와 비대면 진료를 혼동한 개념적 오류도 전문가 자문 부족에서 기인한다.
결국 현재의 원격진료 정책은 졸속 입법의 전형적 사례로, 정책 시행 이후의 관리와 감독체계 구축이 더욱 중요함을 보여준다. 환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의료정책은 그 자체로 국민 건강권 침해이며,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전문가 거버넌스를 배제한 채 추진된 정책의 폐해가 고스란히 의료현장과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