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학회, 간호법 시행 관련 역할 정리 주문
간호법과 업무 분장 충돌…"특수직역 법적 근거 상실 위기"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흉부외과학회)가 당장 내달부터 심장 수술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며 수술 보조 필수인력인 체외순환사를 제도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체외순환사 양성에는 4~5년의 교육시간이 필요하지만 간호협회가 체외순환을 단순 전담간호사의 업무로 분류하면서, 체외순환사라는 특수직역이 법적 근거를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
20일 학회는 긴급 성명서를 통해 "간호법 시행으로 인해 심장 수술의 한 축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체외순환사의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 내달부터 국내 심장 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흉부외과학회는 이날 발표한 대국민 성명서에서 "심장 수술은 심장을 멈추는 과정부터 시작되며, 이때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체외순환 장비를 운용하는 핵심 인력이 바로 체외순환사"라고 강조하며 "이 인력이 없으면 심장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학회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정부나 의료계 누구도 체외순환 업무의 전문성과 특수성에 주목하지 않은 가운데, 학회가 독자적으로 체외순환사의 교육과 인증을 수행해왔다. 지난 15년간 공식 교육과정과 시험제도를 운영했고, 최근 5년간은 '체외순환학교'를 통해 1200시간 이상의 실습과 이론교육, 인증 및 재인증 과정을 통해 인력을 양성해왔다.
문제는 간호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간호협회가 체외순환을 단순 전담간호사의 업무로 분류하면서, 체외순환사라는 특수직역이 법적 근거를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특히 약식 교육만으로 체외순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 전문성과 환자 안전 모두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학회는 "의료 선진국인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은 모두 체외순환사 제도를 갖추고 있고, 이 업무의 고난도와 환자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간호사나 의료기사 중에서 별도 선발 과정을 통해 자격을 부여한다"며 "우리나라처럼 200시간의 교육만으로 단순 전담간호사가 고도의 체외순환 장비를 다룬다는 것은 의료 후진국으로의 퇴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간호법이 현재의 형태로 시행될 경우, 기존에 학회를 통해 교육받은 의료기사 출신 체외순환사들은 법적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간호사 출신 체외순환사들 역시 기사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법적 분쟁 위험에 노출된다. 학회는 "결국 심장 수술에 필수적인 체외순환사라는 직역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명서 말미에서 학회는 "우리는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과 고발을 감수하더라도 심장 수술과 체외순환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법의 영역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어 "심장 수술과 체외순환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이를 법제화할 수 있는 명확하고 신속한 대책을 정부와 유관단체가 마련해야 한다"며 "간호계와 정부, 국회는 직역 간 갈등이 아닌 환자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체외순환사의 합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수는 전국을 통틀어 12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학회는 "필수의료 붕괴의 현실 속에서도 마지막 생명선을 붙들고 있는 흉부외과와 체외순환사의 노력이 법제도의 미비로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직역 갈등이 아니라, 대한민국 심장 수술 시스템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