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장이 경험한 의료취약지 압축판 강원도 양양

발행날짜: 2022-09-13 05:10:00
  • 권성준 양양군 보건소장
    격오지 민간병원 의료공백 보건소에서 역할

서울 유수의 대학병원장을 지내고 정년 이후 강원도 양양군에서 인생 2막을 연 내과의사가 있다. 권성준 강원도 양양군보건소장(전 한양대병원 병원장)의 얘기다. 서울에서 나고자라 격오지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그의 눈에 비친 의료취약지 1번지 강원도 양양군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새 1년 6개월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그를 직접 찾아가봤다.

■강원도 양양군, 척박한 의료현실

"이곳 주민들의 불만은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앰뷸런스를 부르면 30분이 걸린다는 점이다. 워낙 외지고 길이 꼬불꼬불 하다보니 찾아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권성준 보건소장은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와의 만남에서 강원도 양양군의 척박한 의료현실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강원도 양양. 최근 서핑족이 몰려들어 젊은 세대에선 소위 '핫플레이스'로 통하지만 65세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2%를 넘어선 초고령지역이다. 참고로 65세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로 본다.

권성준 양양군 보건소장은 의료취약지의 현실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이 지역의 의료공백은 여기서 발생한다. 인구자체가 없다는 것. 권 소장에 따르면 읍 단위 내 의원급 의료기관은 내과 3곳, 외과 1곳, 정형외과 1곳으로 총 5곳. 속초까지는 30분, 강릉까지는 50~60분이 걸리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고스란히 의료공백을 겪어야 한다.

지난 1년간 태어난 신생아는 90명 정도. 격오지에 초고령지역이지만 산모는 있고 산전진찰 등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없다. 분만하려면 타지로 이동해야한다. 1년간 90명의 산모를 진료하겠다고 산부인과를 개원하는 의사는 없기 때문이다.

민간 의료기관의 공백을 공공의료서비스가 채우고 있다. 모자보건협회 춘천지구에서 2주에 1회씩 산전진단을 온다. 70대 산부인과 전문의가 산전진단을 해준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보건소는 1층 진료실을 내어준다.

보건소 소속 방문간호사 20여명은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 읍 단위에 외진 곳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 고령이다보니 치매 환자도 많고 또 조현병 환자도 많다. 양양군 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단한 조현병 환자만 154명이다. 방문 간호사는 혈압·당뇨도 재고 공중보건의사와 상의해 약을 전달해준다.

결국 격오지 독거노인들의 만성질환부터 치매, 정신질환, 금연사업 등을 추진 하다보니 보건소 조직이 클 수 밖에. 현재 양양군 보건소 인력은 총 100여명. 막연히 시골 보건소를 생각했던 권 소장은 생각보다 크고 폭 넓은 역할에 놀랐다.

양양군 보건소 모습. 격오지 의료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격오지에는 왜 병의원이 없을까

강원도 양양군은 말그대로 의료취약지. 의사도 없지만 인구 자체가 없다.

"내가 개원의라도 안 한다. 개원을 하면 일단 돈을 벌어야 유지를 할 수 있는데 인구가 2만8천명이다. 그 마저도 읍에 1만명이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산다. 양양군 면적은 서울(서울 인구 949만명)과 비슷하다. 그런데 인구는 3만명이

안된다. 얼마나 황량한 지 느낌이 오나."

인근의 속초의료원에도 의료진이 없다. 사정이 비슷한 인제군, 고성군, 양양군, 속초시 등 4곳이 군비, 시비 등 돈을 모아서 산부인과 1명, 소아청소년과 1명을 채용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급여를 높게 준다고 해도 안 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아환자가 밤에 열 나면 응급실로 내원하면 의사 한명이 365일 주·야간으로 근무를 해야 한다. 젊은 의료진은 수도권을 선호하고 고령의 의사는 365일 24시간 근무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나설 수 없다.

24시간 가동하는 대학병원이 들어오면 좋지만 병·의원급조차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개원하지 않는 곳에 대학병원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약국도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도 격오지의 특성을 반영해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운영한다. 권 소장이 파악하고 있는 양양군 내 약국은 총 12곳. 읍에 6곳이 몰려 있고 이외 6개는 강현면에 위치해 있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니 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약사가 약을 줄 수 있다. 이곳에선 항생제 등 다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전문약을 처방할 경우에는 기록으로 남기고 일주일 이상 처방은 금지하고 있다.

마약 혹은 약 택배배송을 감시하는 것도 권 소장의 일이다. 양양군보건소는 수시로 마약류 의약품을 거래하지는 않는지, 약 택배배송이 오가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고, 발견시 경고장을 발송하고 페업조치한다. 권 소장이 근무한 이후 현재까지 적발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권 소장은 격오지 독거노인을 위해 또다시 왕진을 시작할 생각이다.

■강원도 인생 2막…보람과 감사함으로 가득

권 소장은 왜 서울 대학병원과의 판이하게 다른 이곳에서 인생 2막을 연 것일까.

지인과 강원도로 등산을 다니면서 양양과 인연이 닿았지만 그 저변에는 격오지 의사로서 역할을 해야 겠다는 그의 각오가 깔려 있었다.

"내가 의사면허증을 받은 것은 1980년이다. 40년 넘게 대학병원 의사로 환자들에게 '선생님' 대접을 받으면서 진료를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의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받음 고마움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자 한명이라도 자신이 필요하다면 보람을 느낀다고. 그래서 권 소장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그가 양양으로 오면서 가장 하고싶었던 일은 '왕진'. 다른 보건소장이 행정 업무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일주일에 2번은 강현면 보건지소로 순회진료를 하는 등 진료에 매진하고 있다. 속초에서도 차로 15분 더 들어가야 하는 강현면 보건지소로 찾아오는 환자들은 역시 고령의 환자들이다.

"30년간 고생했는데 내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좋아졌다며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인사를 오는 모습에 송구할 따름이다. 얼마나 힘들게 온 지 아니까 더욱 그렇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면서 왕진을 재개할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경로당을 찾는 노인을 대상으로 의학지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권 소장은 경로당에서 사용할 빔프로젝트와 스크린도 구매해 뒀다고.

양양군 보건소에 첫 출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권 소장에게 남은 임기는 6개월 남짓. 그는 소장직 연장 여부를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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