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해관계 따라 환자 치료 제한될라…"국토부 개정안 우려"
심사 데이터 축적 "소송 회피용 기준 생길 것" 법조계 삼각구조 붕괴
보험사가 경상환자 진료비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개정안이 등장하면서 법조계에서도 기존 법체계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에 대한 각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존에 제3의 기관이 맡았던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진료비 지급 판단을 사실상 보험사에 일임하면서,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환자 치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개정안은 교통사고 경상환자가 장기 치료를 받을 경우 진단서 등 관련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고, 보험사가 진료비 지급 여부를 직접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상해일 기준 4·8주 이후에도 치료가 지속될 경우 환자와 의료기관은 보험사로부터 자료 제출 요청과 지급 계획을 통보받게 된다.
법조계에선 이 개정안을 두고 기존 법체계의 삼각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법체계에선 원고·피고·판사로 구성된 삼각 구도가 존재하지만, 개정안 시행 시 보험사라는 '의무자'가 스스로 진료비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는 것.
이는 곧 권리자와 의무자만 존재하는 '2각 구도'로, 제3의 공정한 판단자가 없어 당사자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는 진단이다.
더 큰 문제는 보험사에 진료비 지급 판단 권한이 넘어가면서,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심사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사는 환자의 ▲상해 정도 ▲연령 ▲성별 ▲직업 ▲보험료 납입 이력 등을 분석해 '소송당하지 않을 수준의 보상'에 대한 경험적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의 지급 판단은 환자의 실제 의료적 필요나 피해 규모와 무관하게, 소송 가능성과 내부 편익을 따진 결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결국 보험사는 소송을 피할 수 있는 선에서만 지급 결정을 내리고, 환자는 필요한 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보험사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나온다. 환자가 보험사의 진료비 지급 유효기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보험사 등을 통해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에 심의·조정을 요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험사가 이의 신청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관련 절차가 형식적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법무법인(유한) 텍스트 전성훈 변호사는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사실상 지급 의무자가 자기 의무를 스스로 평가하는 구조가 된다"며 "이렇게 보험회사가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권리자와 의무자 사이에 판단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법적인 삼각 구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보험사는 심사를 계속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해 어느 정도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소송이 줄어드는지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보험사는 환자에게 그 수준의 액수만 지급할 것인데, 결국 보상 기준이 피해자의 상해나 진료 필요성이 아닌 보험사 이익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에선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보험업계 추천 공익위원을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려는 정부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심위는 자동차보험 진료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만큼, 이 위원회의 주도권을 보험업계가 잡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 자동차보험위원회 이태연 위원장은 "분심위는 단순 수가만 심사하는 것이 아닌 자동차보험 진료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다. 보험업계로부터 분심위를 제대로 방어하고 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는 분심위의 기능을 거의 말살하는 문제다. 분심위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