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준 변호사, 한규홍 손해사정사
[메디칼타임즈=오승준 변호사, 한규홍 손해사정사]요즘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 이른바 PitNET 진단을 받은 분들 사이에서 암보험금 지급 여부가 자주 문제되고 있습니다.
주로 병원에서 뇌하수체 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환자들입니다. 병리보고서에는 pituitary adenoma, 즉 뇌하수체 선종이라는 표현과 함께 pituitary neuroendocrine tumor(PitNET), 즉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이라는 표현이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환자는 가입해 둔 보험회사에 암보험금을 청구하지만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합니다.
보험회사는 왜 지급을 거절하는가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지급거절의 출발점은 '선종'이라는 표현입니다.
뇌하수체 선종은 기존 진료현장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양성종양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진단서나 수술확인서에도 D35.2, 즉 뇌하수체의 양성신생물로 기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보험금 분쟁에서 중요한 것은 진단서의 한 단어만이 아닙니다. 보험약관이 무엇을 기준으로 암을 정의하고 있는지, 해당 종양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어떻게 분류되는지, 병리보고서의 실질적 진단명이 무엇인지, 최신 WHO 분류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최근 의학 분류체계에서는 뇌하수체 선종과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의 관계를 과거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개정된 WHO 분류체계에서는 뇌하수체 선종,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 뇌하수체 암종의 분류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법원은 어떻게 보았는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단5336923 판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법원은 환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의료감정을 진행했습니다. 감정인은 환자의 질병이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2021년 개정된 WHO classification에 의하면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은 ICD-O/3 형태코드로 변경되었고, 악성신생물에 해당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특히 감정인은 제8차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의하면,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으로 진단된 경우 적용되는 형태학적 분류코드는 M8240/3 신경내분비종양 NOS이고, 적용되는 질병코드는 C75.1 뇌하수체의 악성신생물이라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이와 같은 감정절차와 전문심리위원 의견을 거쳐, 의학적 분류체계와 보험약관의 문언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PitNET은 이 사건 보험약관상 암보험금 지급 대상이 되는 뇌하수체 악성신생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종'이라는 표현만으로 지급거절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들은 여전히 이렇게 주장합니다.
"2021년 WHO 분류체계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8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뇌하수체 선종과 뇌하수체 암종을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의 종양은 양성신생물 D35.2에 해당할 뿐, 악성신생물 C75.1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가 WHO의 국제질병분류 기준과 체계를 따르고 있고, WHO의 변경 내용을 반영하여 개정되어 왔다는 점을 중시했습니다. 또한 환자의 종양이 뇌하수체 선종이면서 동시에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에 해당한다는 점도 지적하였습니다.
법원은 병리보고서 전체의 의미, PitNET이라는 진단명, WHO 분류체계의 변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코드 적용, 종양의 크기와 침윤 양상까지 함께 환자의 종양을 C75.1 뇌하수체 악성신생물로 최종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이 PitNET 보험금 분쟁에 주는 의미
이 판결은 뇌하수체 선종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보험회사로부터 지급거절을 받았을 때, 어떤 방향으로 다투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첫째, 병리보고서에 '선종'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PitNET은 기존의 뇌하수체 선종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최신 분류체계에서는 이를 신경내분비종양으로 파악하고, 악성신생물 해당 여부를 따져볼 여지가 있습니다.
둘째, 진단서상 질병코드만 보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여전히 관행적으로 D35.2 양성신생물 코드를 기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금 분쟁에서는 병리보고서, 수술기록, 영상검사 결과, 주치의 소견, 병리과 소견, WHO 분류체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종합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보험회사의 의료자문 결과가 항상 최종 결론은 아닙니다.
보험회사는 외부 의료자문을 근거로 지급거절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자문이 어떤 자료를 기초로 이루어졌는지, 자문 의사의 전문성이 적절한지, 질문이 중립적으로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그 신뢰성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보험회사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 감정과 전문심리위원 의견을 거쳐 결론을 냈습니다.
보험금 청구 단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미 법원이 보험금 지급을 인정한 판결이 존재함에도, 실무에서는 여전히 같은 유형의 분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험회사들은 해당 판결이 개별 사건에 관한 하급심 판례일 뿐 다른 보험금 청구자에게 일괄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단서나 수술확인서에 기재된 '양성신생물', '선종', 'D35.2' 등의 표현이 주요한 근거로 제시됩니다.
하지만 보험금 청구는 단순히 진단서 한 장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구 단계에서부터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병리보고서 원문이 중요합니다. 병리보고서의 표현이 적절하게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술기록지에 종양의 크기, 위치, 침윤 여부, 시신경 압박 여부, 해면정맥동 침범 여부 등은 종양의 성격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영상검사 결과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MRI 판독지에 종양의 크기와 주변 조직 침범 소견이 어떻게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험약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약관상 암의 정의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특정암 보장 조항이 있는지, C75.1 또는 C74-C75가 보장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설령 진단서에 D35.2와 같이 양성신생물 코드가 기재되어 있더라도, 병리보고서의 내용과 질병분류 체계, 보험약관의 해석상 보장 대상인 암에 해당한다면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손해사정은 단순히 보험회사에 서류를 제출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보험회사가 어떤 사유로 지급을 거절할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검토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의학자료와 약관상 근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보험금 지급 사유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지급거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은 환자에게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닙니다. 수술을 받아야 하고, 시신경 압박이나 해면정맥동 침범 등 중대한 문제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험금 청구 단계에서는 '선종'이라는 표현 하나 때문에 암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뇌하수체의 악성신생물로 진단되거나 C75.1 코드가 부여된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양성종양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급거절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환자들이 이미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상당한 신체적·경제적 부담을 겪은 상황에서 다시 소송이나 분쟁절차까지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험회사들은 환자들의 이런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을 적극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회사의 지급거절이 언제나 최종적이고 정당한 결론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 사건이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험약관의 내용, 병리보고서의 기재, 진단 시점, 수술 및 영상 소견, 질병코드, 자문 결과에 따라 구체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