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백의 의료인문학 칼럼]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는 영국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화려한 종교화나 고전주의적 이상미보다는 도시의 이면, 인간의 위선, 사회의 불합리를 날카롭게 풍자한 서사적 연작으로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던 18세기 초중반은 계몽주의가 움트던 시기이자, 런던이 인구 팽창과 범죄, 질병, 매춘, 도덕적 혼란으로 소용돌이치던 시대였다. 호가스는 이러한 사회의 일면을 단지 묘사하는 것을 넘어, 시각적 '이야기'로 엮어냈다.
그의 대표작인 '한량의 일대기(A Rake’s Progress)'나 '유행에 따른 결혼(Marriage à-la-mode)'은 단편적인 장면이 아닌 일련의 연속된 도판으로 구성되었으며, 오늘날 영화의 시퀀스를 보는 듯한 서사적 회화(narrative painting)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각각의 장면은 풍부한 상징과 정교한 디테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중은 이 그림들을 통해 인간의 탐욕, 허영, 타락, 그리고 사회적 몰락의 과정을 목격했다. 호가스는 화가이자 사회비평가, 그리고 일종의 '시각적 소설가'였다. 그는 생전에는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이후 한동안 '도덕적 설교가'로만 평가되며 미술사에서는 정당한 재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71년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그러한 관점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전시는 호가스가 단순한 풍자화를 그린 인물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인간 심리를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였음을 입증했다. 그의 작품은 다시 평가되기 시작했고, 이는 호가스가 그림을 통해 당대의 과학, 의학, 윤리, 권력 관계를 어떻게 시각화했는가에 대한 현대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의학적 담론이다. 그는 병든 몸, 광기의 얼굴, 감염병의 징표를 단지 비극의 장치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당시 사회가 환자와 질병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치료’라는 이름의 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했다. 18세기의 의학은 과학적 치료의 시작점에 있었지만 동시에 종교적, 도덕적, 심지어는 주술적 세계관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호가스는 바로 그 교차점에서 질병을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사회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풍속도를 보는 데 있지 않다. 호가스의 병든 인물들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반응은 여전히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감염병 환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 치료와 통제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단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를 되묻는 거울과도 같은 이미지다.
이제, '한량의 일대기'의 마지막 장면 베들렘과, '유행에 따른 결혼'에 숨겨진 검은 점의 의미를 따라가며, 의학과 종교적, 도덕적, 주술적 세계관 사이의 경계에서 호가스가 던지는 질문을 살펴보려 한다. 그 질문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병을 ‘고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병을 빌미로 인간을 규율하고 있는가?
'한량의 일대기(A Rake’s Progress)'의 마지막 장면은 베들렘 병원이다. 톰 레이크웰이라는 주인공은 유산을 탕진하고 도덕적으로 파탄한 끝에 정신을 잃고 베들렘에 수감된다. 그가 누운 공간은 치료의 장소라기보다는 감시와 전시의 장소이다. 쇠사슬에 묶인 환자들, 벌거벗은 채 광기를 내보이는 이들, 그리고 그런 장면을 구경하러 온 상류층 여성들이 보인다. 호가스는 이 그림에서 광기의 의료화와 그것의 소비, 그리고 의학적 권위의 양면을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베들렘의 한쪽 벽에는 점성술 차트가 걸려 있다. 현대의 의학적 설명 이전에 인간의 질병은 별과 기운의 영향으로 이해되었고, 병자는 자신의 체액이 불균형하거나 별의 운에 따라 행동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차트는 여전히 병원의 벽에 있다. 호가스는 의학과 관습, 과학과 미신이 철저히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치료 행위라 불리는 것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주술이다. 사혈, 기도, 굴욕적 노출, 도덕적 훈계 ― 환자의 정신을 회복시키기보다 공동체의 도덕적 안정을 위한 의식처럼 보인다. 의학은 여기서 마법사처럼 군림하고, 병자는 사회 질서에서 추방당한 채 마치 악령이 깃든 존재처럼 격리된다.
'유행에 따른 결혼(Marriage à-la-mode)'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병과 도덕, 의학과 미신이 얽혀 있다. 이 연작은 중산층과 귀족 사이의 위선적인 결혼을 풍자한 시리즈로, 계급 상승 욕망과 성적 일탈, 경제적 부패가 뒤엉킨 인간 군상이 파멸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시리즈의 마지막 도판은 비극적인 종결이다. 아내는 남편을 살해한 내연남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을 감행하고, 그녀 앞에는 어린 딸이 함께 그려져 있다. 어린 딸은 선천성 매독을 상징하는 흉터와 반점이 그려져 있다. 성적 타락과 위선의 유산은 단지 부모의 도덕적 파멸로 그치지 않고, 아이의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진다.

눈여겨볼 부분은 시리즈 중 여기에 제시되지 않았지만 한 장면에서 남편의 얼굴에 나타난 작고 검은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점이 아니다. 당시 매독은 런던 사회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감염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반점과 흉터는 육체적 병리이자 도덕적 경고처럼 여겨졌다. 매독은 성적 무절제, 타락한 결혼, 그리고 타인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병으로 묘사되었다. 남편의 점은 병의 진행을 드러내는 징후이자, 가족 전체에 다가올 비극의 암시이기도 하다. 치료조차 당시에는 고통스러운 수은 요법이 일반적이었고, 환자는 치료로 회복되기보다는 중독과 악화를 겪었다.
호가스가 그린 매독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당대의 도덕률, 계급적 질서, 그리고 '정상성'이라는 신화를 뒤흔드는 장치이다. 병의 징표는 환자의 신체 위에 새겨진 경고문이 되고, 어린아이의 얼굴에까지 그 낙인이 새겨지며, 의학은 이러한 도덕적 통제를 수행하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된다.
호가스의 그림은 질병을 인간의 도덕성과 사회 구조의 거울로서 묘사한다. 병은 단지 신체의 이상이 아니라 사회가 은폐하고 싶은 욕망의 귀결이다. 베들렘에 갇힌 광인과 선천성 매독을 암시하는 아이는 모두 ‘치료’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폐기물로 분류된다. 의학은 그들을 구제하기보다 심판하고 격리하는 장치이며, 이 장치의 작동 방식은 과학보다는 의례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질병현상의 결정요인으로 유전요인, 생활습관 요인, 환경요인 및 제도적 요인 등으로 설명하지만, 그 병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도덕과 낙인의 잔재가 남아 있다. 정신질환자는 여전히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고, 성병은 여전히 수치와 연결되며, 일부 치료는 ‘정상’이라는 규범에 따르기 위한 교정의 형태를 띤다. 호가스는 그 모든 시작점에서 묻는다. 우리는 과연 병을 고치고 있는가, 아니면 병자를 다시 길들이고 있는가? 의학이 과거의 세계관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는 눈이 필요하다. 호가스가 그려낸 베들렘과 검은 점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다.